그러나 우리들은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골방에 들어갈 필요가 없으며 마치 루터가 하나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행한 것처럼 우리 자신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하여 우리들 자신에게 고행을 치르게 할 필요가 없다. 다음과 같은 문답의 말씀이 있다.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7, 8).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라고 말하였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 (요일 1:9) 신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죄의 사유하심을 받지 못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범죄로 상함을 받으시고 우리의 허물로 찔림을 받으신 주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죄가 있다는 것과 주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의 깊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자복은 무한하신 동정심에 이르는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주님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통회하는 자의 영혼을 구원하신다. 1SM 326.1
죄의 자복이 저희 인격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며 저희 동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감소되리라고 상상하는 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이러한 모순된 생각을 고집하므로 허물을 발견하고도 자복하지 않으며 오히려 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잘못된 행실을 묵과해 버린다면 저들은 자신의 생애에 고통을 가중 (加重) 시키는 것이 되며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 어두운 그늘을 던지는 것이 된다. 죄를 자복하는 일은 그대들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거짓된 위신을 떨쳐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거룩하신 바위이신 주님께 떨어져 부서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들에게 참되고 신령한 위신을 주실 것이다. 교만, 자존심 및 독선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를 자복하지 못하고 허락의 말씀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28:13). 하나님께 아무것도 숨기지 말 것이며 그대들의 형제들에게 범한 죄를 자복하는 일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약 5:16). 아직도 많은 죄들이 자복하지 않은 채 마지막 심판의 날을 위하여 죄인에게 맞서고 있다. 오히려 지금 거룩한 희생자께서 그대들을 위하여 대속의 탄원을 하고 계실 때에 그대들에게 맞서고 있는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드시 배우도록 해야 한다. 그대들의 영혼의 건강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은 그대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따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벧전 5:6, 7). 겸비하고 상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갈바리의 십자가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참여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이행하는 자들은 풍성한 축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1SM 326.2
우리들은 하나님께 우리들의 심령을 항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새롭게 하시고 성화하게 하시며 하늘 궁전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은 어떤 특별한 시기를 위해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죄의 종이 되기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여러 번에 걸쳐서 매번 조금씩 죄를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아, 그 가증한 죄를 당장 버리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을 미워하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것들을 사랑하라. 주님께서 그대들을 죄에서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죽으심과 고난으로써 이미 섭리를 베풀어놓지 않으셨는가? 우리들이 죄인이며 신령하신 바위에 떨어져 부서진다는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때에 영원하신 팔이 우리들을 안아 주시며 우리들을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이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주님의 사랑에 매혹될 것이며 우리들 자신의 의에 대하여 지긋지긋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들은 십자가의 바로 밑까지 가까이 갈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들 자신이 겸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고상하게 드러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하다고 느끼며 상당히 선하며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만족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거룩한 빛과 도우심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의 마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실 자리가 없다. 1SM 327.1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가 있으시며 우리들은 당신의 영과 권능을 큰 분량으로 받을 수 있다. 독선의 찌꺼기를 주워먹지 말고 주님께로 가라. 주님께서는 그대들에게 입힐 가장 좋은 예복을 가지고 계시며 그대들을 받으시기 위하여 팔을 넓게 벌리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더러운 두루마기를 그에게서 벗겨버리고 새옷으로 갈아입히라” 고 말씀하실 것이다. 1SM 328.1
그러면 우리들이 정결함을 입었다는 느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인가? —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것” (요일 1:9) 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확증을 받게 된다.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믿기 이전에 어떤 놀라운 감정의 변화가 있기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감정이란 구름처럼 변하기 쉬운 것이어서 감정을 그대들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신앙의 기초로서 확고한 무엇을 가져야만 한다. 주님의 말씀은 그대들이 의뢰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의 말씀이며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갈바리를 바라보라. 주님께서 그대들의 대언자가 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무엇이든지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면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대들은 결코 그대들 자신의 선이나 선행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 의탁하기 위하여 나와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의 죄를 씻겨 주셨고 당신의 의를 그대들에게 전가 (轉嫁) 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1SM 328.2
그대들은 거룩하신 대언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회개한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나와야 하며 자비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늘 아버지에게 나올 때에 당신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행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자들은 문을 두드리고 자비의 보좌에서 기다리며 확고한 보장을 가지고 “아,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나이다” 라고 말하라.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당신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갖기 원하신다. 1SM 328.3
주님께서는 가장 통속적이며 보편적인 사건을 인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요구를 얼마나 기꺼이 들으시며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하여 나타내 보여주시려고 애쓰셨다.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9-11)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나타내는 육신적인 애정을 설명하심으로써 인간을 도우시려는 하나님의 자발적인 심령에 관하여 우리들에게 호소하셨다. 과연 어떤 아버지가 떡을 달라는 자기 아들의 요청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마치 당신의 자녀들의 요청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는 분처럼 상상하므로 하나님께 욕을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은 과연 부모를 마치 자기 자녀에게 잔뜩 기대만을 안겨 주었다가 실망시킴으로써 자기 자녀를 희롱하며 애태우는 자로 생각해도 좋을 것인가? 어떤 아버지가 맛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그의 자녀에게 주기로 약속했다가 돌을 줄 것이란 말인가? 만약 그대들이 비록 악한 인간들일지라도 자기 자식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주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당신께 구하는 자들에게 더욱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을 것인가? 주님께서는 당신께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보장하셨다. 1SM 329.1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고 믿는 죄인의 자복을 당신 자신의 의와 혼합하시며 타락한 인간의 기도가 하늘 아버지 앞에 이르는 분향처럼 상달케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믿는 영혼에게 전가 (轉嫁) 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떨며 회개하는 영혼에게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사 27: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그대들을 설득하도록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가? 그대들은 진실하신 창조주에게 그대들의 영혼을 보호해 달라고 주님께 맡기지 않을 것인가? 우리들은 다같이 나아가 주님의 얼굴의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할 것이며 마치 다윗처럼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7) 하고 기도할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그대들을 눈보다 더 희게 해줄 수 있으므로 믿음으로써 그대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라. 그러나 그대들은 “이처럼 나의 모든 우상들을 깨끗이 포기한다면 나의 마음은 찢어질 것이다” 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의 자세를 신령하신 반석 위에 떨어져 부서지는 것으로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라. 그대들이 부서지지 않는 한 그대들은 무가치한 자들이 될 것이다. 1SM 329.2
그대들이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 (렘 2:13) 에서 돌아설 때, 그대들의 대언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나아와 그대들이 필요한 것들을 간구할 때, 그리스도의 의는 그대들의 의로 나타날 것이며 그리스도의 공로는 그대들의 공로로 나타날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그대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며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품성의 완전하심이 나타나 있고 주님의 생애 가운데 신성의 원칙들의 작용하심이 나타나 있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피를 힘입음으로써만 속박과 신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오직 죄가 없으신 대치물과 담보물이 되시는 주님의 완전성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경주 (競走) 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인간은 언제나 율법의 정죄 밑에 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서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다. 1SM 3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