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격발되어 왔으나 사람들이 그와 같이 큰 사랑을 다만 피상적인 감사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천사들은 매우 놀란다. 천사들은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낮게 평가하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란다. 하늘은 사람들이 영혼들에 대해 나타내는 태만을 보고 의분을 갖는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보실지를 우리는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저희 자녀를 구해낼 수 있었던 자들이 그들을 죽도록 버려 두고 그냥 지나갔다는 것을 그 부모가 알았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들은 몹시 슬퍼하며 극도로 분개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자식에 대한 뜨거운 눈물과 비길 데 없는 사랑만큼이나 격렬한 분노로 그 살인자들을 고발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고통이며 죽어가는 저희 동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분을 격발시킨다.─시대의 소망, 825(영문). ChS 92.2
나는 어떤 추운 겨울날 눈이 많이 쌓인 산길을 가고 있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는 추위로 인하여 몸의 감각을 잃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활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가 혹심한 추위로 인하여 거의 얼어 죽게 되어 생명을 포기하려고 할 무렵 어떤 여행자의 신음 소리를 듣고 가보니 그도 자기처럼 추위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 때에 그는 그 사람을 살려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얼어 붙은 그 불쌍한 사람의 사지를 문지르기 시작했으며 한참 동안 그렇게 한 후 그를 일으켜 세웠지만 그가 일어서지 못함으로 자기 혼자서도 지나가기 어려운 눈길인데도 그를 업고 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여행자를 안전한 장소에까지 업고 왔을 때에 이웃을 구해 줌으로써 자기 자신도 살았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갑자기 떠올랐다. 남을 구해 주려는 그의 열렬한 노력이, 자기 혈관 속에서 점점 얼어가고 있던 혈액을 빨리 순환시켜 몸의 각 지체를 뜨겁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말로만 아니라 모본으로 젊은 신자들에게 계속 가르쳐 줌으로써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도 같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4T, 319, 320. ChS 92.3
그대는 자신을 묶어 둔 채 가만히 앉아서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대에게 진리를 전하여 준 자가 누군가? 누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그대에게 보여 주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빛을 말 아래 두라고 그대에게 주시지 않으셨다. 나는 북극 탐험가 죤 프랭크린(John Franklin)을 찾기 위하여 파송된 탐험대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다. 여러 용사들이 저희 가정을 떠나서 많은 고난과 굶주림과 추위와 재난을 겪으면서 북해(北海)를 헤매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단순히 탐험가들의 죽은 시체를 발견하는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혹은 혹시라도 빨리 구조가 이르지 않는다면 닥쳐 올 무서운 죽음에서 가능한 한 그들 중 몇 명이라도 건지기 위해서였을까? 만일 그들이 단 한 사람이라도 죽음에서부터 구해 낼 수 있었다면 그들은 그들이 치른 고생의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그 일은 그들의 모든 안락과 행복을 희생시키고 감행했던 것이다. ChS 93.1
이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우리 주위에 있는 귀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얼마나 희생을 적게 하려고 하는지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집을 떠나 멀고도 지루한 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 바로 우리 집안, 우리 주위와 사방에 구원하여야 할 영혼, 죽어가는 영혼,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남녀들이 있는데도 우리는 태연하게, 직접 입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실상 우리의 행동으로써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하고 말하겠는가? 남을 구하려다가 자기 목숨을 잃어버린 자들은 세상에서 영웅과 순교자들로서 높임을 받는다. 만일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조그마한 희생도 하지 않는다면 영생을 바라보는 우리로서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하겠는가?─RH, 1888.8.14. ChS 93.2
뉴잉글랜드 지방의 어떤 마을에서 우물을 파고 있었다. 거의 다 팠을 무렵에, 아직 그 속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흙이 무너져 그를 매몰하여 버렸다. 그러자 곧 온 동리에 그 소식이 퍼지고, 사람들은 직공, 농부, 상인, 변호사 할 것 없이 모두 단숨에 그 곳에 몰려왔다. 자진해서 밧줄과 사다리와 삽과 괭이등을 가져와서 “그를 구출하자”고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었다. ChS 94.1
사람들은 이마에 구슬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팔이 떨리기까지 죽을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드디어 철관을 박고, 그것을 통해 우물 속에 묻혀 있는 사람에게, 아직 살아 있으면 대답하라고 소리질렀다. “살아 있으니 빨리 도와주시오, 여기는 무섭소” 하는 소리가 그 속에 들려왔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여 다시 원기를 내어 열심히 파헤쳐 내고, 마침내 그 사람을 구출하였다. 사람들은 기뻐하여 “그가 구출되었다”고 하늘을 찌를 듯이 외쳤고, 그 소리는 동리 거리 거리마다 안 들리는 곳이 없었다. ChS 94.2
한 사람을 구원하려고 그와 같은 열심과 관심과 열성을 나타내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었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일시적인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영생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중대한 일인가? 한 생명이 죽게 된 사실이 사람들의 마음에 그렇게 강력한 충격을 일으켰거든, 하물며 영혼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을 경우에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떠난 자의 위험을 안다 하는 자들은 더욱 힘쓰고 염려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종들은 그 우물 속에 파묻혔던 사람에게 나타낸 것과 같은 열성으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복음 교역자, 27, 28. ChS 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