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께서는 진리 안에 있는 신자들 가운데 분열과 다툼이 있는 곳에는 거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런 감정들이 표현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마음을 점령하고 그리스도인 교회를 특징지어야 할 평화와 사랑을 몰아낸다. 그것들은 가장 충만한 의미에서 이기심의 결과이다. 이 악은 지나친 자부심이나 다른 사람들의 인정 (그 인정이 받으려고 하지 않는데 얻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을 받고자 하는 과도한 갈망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자기를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에 의해 포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은총으로 말미암는 축복을 받기를 기대할 필요가 없다. 4T 221.2
건강 기관에서의 도덕적 및 종교적 영향은 하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고상하게 되어야 한다. 이기심의 방종은 그 곳에서 확실히 하나님의 영을 슬프시게 할 것이다. 의사들, 감독자들, 그리고 조력자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면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조화롭게 일해야 한다. 4T 221.3
사도 유다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유 22). 이런 의심은 편파적인 정신으로 행사되어서는 안된다. 다음과 같이 암시하는 정신의 뒤를 밀어 주어서는 안된다. “네가 나에게 호의를 보이면 나도 너에게 호의를 보일 것이다.” 이것은 성화되지 않은 세상적 정책,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정책이다. 이것은 이득을 얻기 위하여 호의와 찬탄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을 통하여 이득을 얻기를 기대하면서 특정인들을 편애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다른 사람보다 우리가 더 큰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풂으로 그들의 선한 의지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잘못을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각 사람은 시기, 적대, 불신, 흠을 찾는 것, 그리고 불화의 정신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4T 221.4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른다. 우리는 한 가족의 자녀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쌓아올리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존경과 영향을 약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을 때, 우리는 원수를 기쁘게 하고 우리가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그분을 슬프시게 한다. 예수께서 자신의 고귀한 생애에서 나타내신 친절과 자비는, 우리가 동료 인간들과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들인 자들을 취급하는 방식에서 우리에게 모본이 되어야 한다. 4T 222.1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이롭게 하시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분의 은총들에 대하여 너무도 무관심하다. 무한한 친절로 사랑을 받았건만 우리들 중 다수가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너무 적다. 우리는 오류 가운데 있다고 상정 (想定)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너무도 가혹하며, 우리 자신의 행위에 관한 아주 작은 비난이나 의문에 대해서는 너무도 민감하다. 4T 222.2
암시가 던져지고 서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 던져지지만, 동시에 이런 암시와 비평을 던지는 바로 그들은 자신의 실패들에 대하여는 눈이 멀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실수를 볼 수 있으나 그들 자신의 실수를 볼 수 없다. 우리는 날마다 하늘의 은택을 받는 자들이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하는 감사가 넘쳐 나와야 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이웃에 대하여 동정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그들의 관심사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생각과 묵상은 사단의 암시들에 대해 영혼의 통로를 닫을 것이다. 4T 222.3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날마다 입증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분의 은총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그분의 간청에 무관심하다. 그분은 당신의 친절의 영과 당신의 사랑과 관용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려고 애쓰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친절의 표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며 그분께서 우리가 배우기를 갈망하시는 사랑의 공과에 대하여 별 느낌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하만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은총들을 잊는다. 왜냐하면 모르드개가 그들 앞에 있고, 욕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당신의 원수들을 위해 그분의 고귀한 생명을 주신 우리의 사랑하는 구속주의 정신인 사랑이 아니라 증오와 적의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일한 아버지를 모시고, 동일한 불멸의 본향을 향하여 가고 있으며, 동일한 엄숙한 믿음을 향유하고 동일한 시험하는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서로 싸우고 있다. 사업의 같은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서로 사이가 나쁘며,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영과 불화하고 있다. 4T 222.4
칭찬에 대한 사랑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부패시켜 왔다. 건강 기관과 관련을 맺어 온 사람들이 때때로 수립된 계획에 대하여 흠을 찾는 정신을 나타내 왔으며, 사단은 그들에게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할 권한을 주었는데, 그들은 이 사람들을 비난받을 점이 없다고 받아들인 반면에 죄 없는 자들은 잘못 행했다고 고소를 당해 왔다. 자기 자신의 헛된 행위를 기뻐하고 자신의 탁월한 자질을 자랑하면서 자아를 높이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열등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쓰며, 무정한 자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주장하는 것은 사악한 교만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주님의 교훈에 유의할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분부하셨다. 종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기초되어 있으며, 그것은 서로 사랑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것은 감사와 겸비와 오래 참음이 가득하다. 그것은 자아를 희생하고 오래 참고, 자비롭고 용서성이 많다. 그것은 전 생애를 성화시키고 그 영향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뻗친다. 4T 223.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적개심이나 시기심을 품을 수 없다. 영원한 사랑의 하늘 원칙이 마음을 채울 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갈 것이다. 그저 그들로부터 호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행동의 원칙이며, 품성을 변화시키고, 충동을 제어하며, 정욕을 통제하고 적의를 굴복시키고 애정을 향상시키고 고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단순히 “나와 나의 것” 을 포함하도록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처럼 넓고 하늘처럼 높으며, 천사 일꾼들의 그것과 조화된다. 영혼 속에 이 사랑을 품으면, 그것은 전 생애를 향기롭게,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련 (精練) 시키는 영향을 끼친다. 그것을 소유하면 우리는 운명의 신이 미소를 짓든지 얼굴을 찌푸리든지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을 또한 사랑해야 한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정신이다. 영혼에게 참된 고결함과 존엄 (尊嚴) 을 주고 우리의 생애를 주님의 그것에 동화되도록 하는 것은 하늘의 단장 (丹粧) 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좋은 특질들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우리가 자신이 아무리 존귀하고 세련되었다고 간주할지라도, 영혼이 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하늘 미덕으로 침례를 받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선함이 부족하며, 모든 것이 사랑과 화합뿐인 하늘에는 부적합하다. 4T 223.2
이전에 하나님을 사랑했고 날마다 그분의 은총을 누리며 살았던 어떤 사람들이 지금은 끊임없는 불안 가운데 있다. 그들은 자아를 육성시키고 있기 때문에 어둠과 절망적인 우울함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너무도 열심히 자신들을 소중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각해야 할 다른 모든 것들은 이것에 파묻혀 버린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서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것으로는 어떤 사람도 행복을 얻을 수 없도록 하셨다. 우리 주님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수고와 수치를 견디는 것에 있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모본을 따르고 우리 동료 인간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사는 데서 행복하게 될 수 있다. 4T 224.1
우리는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짐을 지라는 주님의 초청을 받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부과한 멍에를 메고 우리 자신의 짐을 지는 데서는 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멜 때는 영혼에게 쉼이 있다. 주님을 위하여 어떤 위대한 일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선을 행하고, 자아를 잊고, 자아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햇빛을 가지고 감으로써 그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4T 224.2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자애로운 동정심이 나타내져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죄를 그럴듯한 말로 발뺌하고, 악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에 모욕을 끼치는 그런 맹목적인 동정이 아니라, 생애를 지배하는 원칙이 되는 사랑,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선행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는 사랑이 크게 필요된다. 4T 224.3
건강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위대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병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은 그분의 특별한 돌봄의 대상이었다.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그분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병자들을 치료하도록 사명을 주셨다. 70인을 보내실 때, 그분은 그들에게 병자를 고치고,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도록 명하셨다. 그들의 육체적 건강이 제일 먼저 돌봄을 받아야 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사도들이 전파할 그러한 진리들로 말미암아 접촉될 수 있도록 길이 준비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4T 225.1
세상의 구주께서는 설교하시는 것보다 병 걸린 자들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셨다. 지상에 있는 그분의 대표자들인 그분의 사도들에게 하신 그분의 마지막 분부는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치는 것이었다. 주께서 오실 때 그분은 병자들을 방문하고 고통 당하는 자들의 궁핍을 덜어 준 자들을 칭찬하실 것이다. 4T 225.2
우리는 사소한 일들의 강력한 영향과 그것이 영혼의 구원에 미치는 관계를 배우는 데 더디다. 건강 기관에서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넓은 밭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등한히 여김을 받고 있는 동안 큰 존경으로 우러름을 받는 특권 받는 소수가 되기를 의도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을 낮추사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 수종드셨고, 사람이나 지위에 따라 사람을 편애하지 않으셨다. 4T 225.3
사업에 전심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건강 기관에서 그들의 보호 아래 맡겨진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데 있어서 주님을 위해 할 일이 충분함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가장 굴욕적인 직무를 수행하신 후 당신의 모본을 따르도록 그들에게 권고하셨다. 이것은 그들이 가장 낮은 성도보다 우월감을 느껴서는 안된다는 사상을 그들 앞에 계속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4T 225.4
우리의 고귀한 신앙을 공언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우리 주님의 속히 오심을 고대하는 사람들은 그들 주위의 세상과는 다르고 또 구별되어야 하며, 선한 일에 열심인, 특이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과 구별시키는 특색들 중에 그들의 겸비와 온유함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게서 배우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헛되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평안이 여기 있다. 명예와 지위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동등되거나 아마도 더 높고자 하는 야심을 갖는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겸손하고 신실한 종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러한 자아 확대의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던 때에도 사도들 가운데 다툼을 일으켰다. 그들은 그들 중에 누가 가장 크냐 하는 것으로 논쟁을 벌였다. 예수께서는 앉으시고 열두 제자를 부르사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9:35). 4T 225.5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들들이 그분의 왕국에서 하나는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도록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의 왕국의 명예와 영광은 이 세상의 명예와 영광과는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 주셨다. 크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겸비하게 시중 들어야 하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 자녀들에게 봉사자요 종으로 일하셨듯이, 종이 되어야 한다. 4T 226.1
다시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지위와 이름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8-12). 예수님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거룩한 율법을 율법사에게 상기시키셨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눅 10:37). 4T 226.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일어난다. “누가 나의 이웃이오니까?” 그분의 대답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우리의 동정과 친절한 봉사가 필요되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의 이웃이라고 가르친다. 고통 당하고 빈곤한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이다. 그리고 그들의 결핍을 우리가 알게 되었을 때 가능한 한 그것들을 경감시켜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이 비유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채택하는 것이 좋을 한 원칙이 도출되었다. 먼저 궁핍한 자들의 세속적 필요를 채워 주고 그들의 신체적 필요와 고통을 채워 주라. 그러면 그대는 마음에 접근할 길이 열린 것을 발견할 것이며, 그곳에 미덕과 종교의 좋은 씨를 뿌릴 수 있다. 4T 226.3
행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바 그런 품성에 도달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현저한 특색의 하나는 그분의 자아 부정과 자선 (慈善) 이었다. 그분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오지 않으셨다. 그분은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셨으며, 이것이 그분의 양식이요 음료였다. 우리는 구주의 모본을 따름으로써 그분과 거룩한 교통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날마다 그분의 품성을 모방하고 그분의 모본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세상에 축복이 될 것이며, 현세에서는 자신을 위하여 만족을, 내세에서는 영원한 상급을 얻을 것이다. 4T 2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