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자들은 순결하고, 정직하고, 신뢰할 만하며, 또한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동정심이 많으며, 예모가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예모가 바른 자들과의 교제에는 매력이 있다. 친절한 말, 유쾌한 모습, 예절 바른 품행들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예의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이들을 소홀히 함을 통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면서도 예모가 없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3SM 237.1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서 사신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분은 흠 없는 순결성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내, 온화, 기질의 매력에 있어서도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진리와 의무에 관한 한 바위처럼 견고했으나 늘 친절하고 예모가 바르셨다. 그분의 삶은 진정한 예모에 대한 예증이다. 그분은 핍절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늘 친절한 눈길과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3SM 237.2
그분의 임재는 가정에 보다 순결한 분위기를 가져왔으며 그분의 생애는 사회의 구성 인자들 가운데 역사하는 누룩과 같았다. 그분은 지각이 없고, 거칠고, 예모 없는 자들과 불공정한 세리, 불의한 사마리아인들, 이방인 군인들, 거친 농부들, 그리고 잡다한 군중들 가운데를 걸으셨다. 그분은 인간이 피곤함과 무거운 짐을 지도록 강요받고 있음을 보실 때에 여기저기에서 동정의 말씀을 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짐을 나누어 지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친절과 선하심의 속성으로부터 배우신 교훈을 반복하셨다. 3SM 237.3
그분은 가장 거칠고 가망이 없는 자들 앞에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내보일 그러한 품성을 획득함으로써 그들이 비난할 것이 없고 해가 없는 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놓아서 그들을 희망으로 고취시키시고자 하셨다. 3SM 238.1
불신자들에게 봉사함 —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이셨으나 사마리아인들과 섞이셨다. 자신의 민족의 바리새인적인 관습을 무효화하시면서 그들의 편견의 면전에서 그분은 이 멸시받는 백성의 호의를 받아 들이셨다. 그분은 그들의 지붕 아래서 주무셨으며 그들의 식탁에서 함께 잡수셨으며 그들의 손으로 준비되고 제공되는 음식을 함께 나누셨으며-그들의 거리에서 가르치셨고 그들을 최상의 친절과 예모로 다루셨다. 3SM 238.2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동정과 사교적 친절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심을 보여주시면서 세리의 식탁에 영예로운 손님으로 앉으셨다. 사람들은 그분의 신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들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갈급한 영혼들 위에 그분의 말씀은 축복과 생기를 주는 능력으로 임하셨다. 새로운 충동이 일깨워지고 새로운 생애의 가능성이 이 사회의 버림받은 자들에게 열렸다. 3SM 238.3
복음을 위한 강력한 논증 —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모든 거친 기질들을 순화시킨다. 순결과 성실에 대한 높은 감각을 밝은 성격과 결합시키는 법을 그분으로부터 배우도록 하자. 친절하고 예모 있는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해 산출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논증이다. 3SM 238.4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어떤 이들의 행동은 친절과 예모가 너무 결핍되므로 그들의 선함이 악평을 받는다. 그들의 신실함은 의심할 나위가 없으며 그들의 정직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실함과 정직성이 친절함과 예모의 결핍을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한 자들은 구원의 계획이 인간의 속성 안에 있는 단단하고 거친 것은 무엇이든 부드럽게 하도록 실행되는 긍휼의 계획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람을 모든 이에게 친절하고 사려 깊게 만드는 그 드문 그리스도인 예모를 배양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진실한 만큼 동정적이며 정직하고 곧은 만큼 인정 많고 예의가 발라야 한다. 3SM 238.5
세상에 속한 사람들도 예모 있게 되기를 배우며 가능한 한 스스로를 호감이 가게 하기 위하여 연구한다. 그들은 그들의 응대와 예모를 그들과 사귀는 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도록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기술적으로 그들의 지식과 능력을 사용한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라.” 3SM 239.1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대는 그들의 삶의 몫이 수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장래에 더 나은 것들에 대한 희망도 없이 노고와 핍절이 그들의 짐을 매우 무겁게 한다. 그리고 고통과 질병이 더해지면 그 짐은 거의 그들이 견딜 수 있는 무게를 초과하게 된다. 고생에 지치고 눌려서 그들은 위안을 얻기 위하여 어디로 향해야 할 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한 자들을 만나게 될 때에는 그들을 돕는 일에 그대의 온 마음을 쏟아라. 그러한 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이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음을 기억하라. 그들을 대함에 있어서 동정적이며 예모 있게 하라. 이것은 그대로 하여금 그들을 돕고 그들의 신뢰를 얻으며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길을 열 것이다. 3SM 239.2
그리스도의 은혜가 온 사람을 변화시킴 — 사도는 우리에게 권면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 16). 그리스도의 은혜는 조악한 것을 정련시키고 거친 것을 부드럽게 하며 이기적인 것을 관대하게 하면서 온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성미와 음성을 지배한다. 그것의 외적 역사는 형제가 형제에게 친절한 격려의 말과 무아적인 행동을 통해 나타내는 정중함과 부드러운 관심에 보여진다. 가정에는 천사가 임재한다. 생애는 달콤한 향기를 내뿜으며 이것은 거룩한 향으로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3SM 239.3
사랑은 친절, 부드러움, 인내, 오래 참음으로 표현된다. 얼굴의 표정은 변한다. 하늘의 평화가 드러난다. 인간의 사랑을 초월하는 부드러움이 항상 보인다. 인성이 신성을 나누어 받게 된다. 그리스도는 품성의 완전으로 인하여 영예를 받으신다. 이러한 변화가 완성될 때 천사들은 환희의 노래를 터뜨리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거룩한 본을 따라 꼴 지어진 영혼에 대하여 기뻐하신다. 3SM 239.4
유쾌한 음조와 올바른 언어 — 우리는 순수하고 올바른 언어와 친절하고 예모 있는 말을 사용하며 스스로를 유쾌한 음조로 말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친절한 말은 영혼에게 마치 이슬과 부드러운 비와 같다.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분이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 도록 그분의 입술에 은혜가 부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하” 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골 4:6; 엡 4:29). 3SM 240.1
그대가 접촉하게 되는 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거칠고 예모가 없을 수가 있으나 이것 때문에 그대 스스로 덜 예모스럽게 되지 말라. 자신의 자기 존중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자는 다른 이들의 자기 존중을 필요 없이 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이 법칙은 가장 둔하고 어줍잖은 사람들에게도 신성하게 지켜져야 한다. 3SM 240.2
이 분명히 가망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려 하시는지를 그대는 모른다. 과거에 그분은 더이상 가망이 없거나 매력이 없는 자들을 받으셔서 그분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도록 하셨다. 그분의 영이 마음에 움직여서 모든 기능이 활발하게 동작하도록 일깨웠다. 주님은 그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 가운데서 폭풍의 시험과 열기와 압력을 견딜 귀한 재료를 보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시지 않는다. 그분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살피시며 올바로 판단하신다. 3SM 240.3
항상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에 주의하고 부드러운 친절과 이타적인 사랑의 행동으로 그들의 짐을 가볍게 하면서 자아를 잊자. 가정에서 시작되어 가정의 테두리를 훨씬 넘어 멀리까지 확산되는 이들 사려 깊은 예모는 생애의 행복의 절정을 이루는 데까지 나갈 것이며 이들에 대한 소홀함은 생애의 비참함의 적지 않은 몫을 우리에게 안겨 줄 것이다. — 원고 69, 1902 (1959년 8월 20일자 리뷰 앤드 헤랄드에 게재). 3SM 2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