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피는 여러 세기에 걸쳐 흘렀다. 왈덴스교도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위하여” 피에몽 산에서 그들의 생명을 버렸을 때, 프랑스에서는 그들의 형제인 알비젠스 (Albigens) 들이 진리에 대하여 동일한 증거를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에 그 교도들은 참혹한 고문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왕과 귀족들과 상류 계급의 부인들과 연약한 처녀들과 그 나라의 교만한 사람들과 무사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용감한 위그노 (Huguenot) 들은 사람의 양심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싸움을 계속하고, 많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피를 흘렸다. 개신교도들은 법률상 보호에서 제외된 자로 인정되어 그들의 머리에는 현상금이 붙게 되었고, 그들은 들짐승들처럼 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GC 271.2
고대 그리스도인들 중의 소수의 후예들로서 18세기 당시까지 프랑스의 남방 산중에 숨어서 거주하고 있던 “광야 교회”는 여전히 조상들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밤을 틈타서 그들이 산중턱이나 적막한 들에서 몰래 집회를 열고자 할 때, 그들은 갑작스런 용기병 (龍騎兵) 들의 추격으로 붙잡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예나 죄수들이 노를 저어 다니는 갤리선 (galleys) 에서 죽는 날까지 고역을 당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순수하고, 기품 있고, 지성적인 사람들은 강도들과 살인자들 사이에 섞여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쇠사슬에 매여 있게 되었다 (Wylie, b.22, ch.6 참조). 좀 더 자비로운 처분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런 무장도 없이 속절없는 형편에서 기도하고자 무릎을 꿇었을 때 참혹하게 사격을 당하였다. 수백 명의 나이 많은 남자들, 방비 없는 여자들, 천진한 어린이들이 그들의 집회 장소에서 살해되어 그대로 내버려졌다. 그들이 평소에 집회를 하던 산 중턱이나 산림 속을 지나갈 때 시체가 풀밭 사방에 흩어져 있거나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는 일은 별로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나라는 “검과 도끼와 나무 (화형에 쓰는 장작) 로써 황량하여졌고, 하나의 쓸쓸하고 큰 광야로 바뀌고 말았다.” “이처럼 흉악한 사건은…암흑시대에 행하여진 것이 아니라 루이 14세의 찬란한 시대에 자행되었다. 그 당시에 과학은 발달되고 문예가 부흥되고, 궁궐과 수도에 사는 성직자들은 유식하고 말 잘하는 변사들이며, 겸손과 자비의 미덕을 사랑하는 자들로 인정받고 있었다” (Wylie, b.22, ch.7). GC 271.3
죄악의 참혹한 목록 가운데서 가장 암흑한 것, 곧 각 세기를 통하여 자행된 잔인무도한 일 중에서 가장 끔찍스런 만행은 성 바돌로매 제일 (祭日) 대학살이다. 세상은 오늘날도 여전히 그 잔인하고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습격의 광경을 공포와 전율로써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왕은 로마교의 승려와 주교들의 강요로 그 흉악한 행위를 묵인하였다. 그리하여 사방이 고요한 한밤중의 적막을 깨뜨리고 울려 퍼진 왕궁의 큰 종소리는 학살에 대한 신호가 되었다. 수천 명의 개신교도들은 왕의 명예를 건 약속만을 신뢰하고 각자의 집에서 평안히 자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끌려 나가 무참하게 살육을 당하였다. GC 2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