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18세기에 루터 교회의 한 목사요 성경학자요 평론가로 유명한 벵겔이라는 사람이 이 교리를 가르쳤다. 벵겔은 학업을 마치고 신학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그가 받은 초기의 교육과 훈련은 그의 마음에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엄숙한 생각과 종교적 기질을 깊게 하고 강하게 하였다. 그도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사고력 (思考力) 이 많은 다른 청년들처럼 종교적 의문과 어려운 문제들로 인하여 번민하였는데, 그는 감개무량한 가운데 “자기의 가련한 마음을 꿰뚫고 그 젊은 감정을 못 견디게 만들었던 허다한 화살들에 대하여 말하였다.” 비텐베르크의 종교 법원 (宗敎法院) 의 일원이 되자 그는 종교 자유를 부르짖었다. “그는 교회의 권리와 특권을 주장하는 한편, 양심을 위하여 교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누릴 온갖 자유를 위하는 옹호자가 되었다” (Encyclo-pedia Britannica, 9th ed., art.“Bengel”). 그와 같은 방침에서 나온 훌륭한 결과가 오늘날에도 그의 고향에 남아 있다. GC 363.2
그리스도의 재림의 진리가 벵겔의 마음에 확신을 준 것은 그가 강림절 (降臨節) 의 일요일에 사용할 설교의 준비를 위하여 요한계시록 21장을 연구하던 때이었다. 그는 이때에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과거 어느 때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그 예언에 나타난 광경이 너무도 중대하고 영광스럽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한동안 그 문제에 대한 명상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강단에서 설교를 하게 되자 그 생각은 다시 생생하게, 또한 능력 있게 그에게 나타났다. 그때부터 그는 예언서, 특히 요한계시록의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오래지 아니하여 그 예언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라고 확정한 연대는 그 후에 밀러가 주장한 연대와 비교하면 매우 근소한 차이밖에 없었다. GC 363.3
벵겔의 저서는 그리스도교국에 널리 전하여졌다. 예언에 관한 그의 견해는 그의 고향인 비텐베르크에서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여졌으며, 또한 독일의 다른 지방에도 전해졌다. 그리하여 그 운동은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는데, 재림기별은 독일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같은 시기에 전파되었다. 또한 초기의 신자들 중의 몇 사람이 러시아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이민단을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그 나라의 독일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신앙을 존속시키고 있다. GC 3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