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상 성화를 체험한 사람은 겸손한 정신을 나타낼 것이다. 성결의 두려운 위엄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세처럼, 무한하신 하나님의 순결하심과 완전하심에 비하여 그들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된다. GC 470.2
선지자 다니엘은 참된 성화의 모본이었다. 그의 긴 일생은 그의 주님을 위하여 바친 고상한 봉사로 가득 차있었다. 그는 하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단 10:11) 이었다. 그러나 이 존경받는 선지자는 자신의 순결과 성결을 주장하는 대신에 자신을 죄 많은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그는 다시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나이다고 하였다. 그 후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교훈을 주셨을 때에 그는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다고 하였다 (단 9:18, 15, 20, 10:8). GC 470.3
욥도 폭풍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6) 고 부르짖었다. 또 이사야는 스랍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하고 창화하는 소리를 듣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사 6:3, 5) 고 크게 외쳤다. 바울은 셋째 하늘로 이끌려가서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은 후 자기 자신을 가리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 (고후 12:2; 엡 3:8) 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사랑을 받은 요한은 그분의 영광을 보고 천사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것같이 되었다 (계 1:17 참조). GC 471.1
갈바리 십자가의 그늘 밑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자고하거나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으스대는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고뇌의 원인이 자기들의 죄였다는 것을 느끼며, 그런 생각이 그들을 스스로 겸비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 생애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악과 약점을 가장 분명히 깨닫고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GC 471.2
오늘날의 종교계에서 성화를 두드러지게 논의하고 있지만 자아를 높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정신과 병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성경의 종교와는 거리가 먼 상태에 놓여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성화가 순간적인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완전한 성결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축복은 네 것이다”고 말한다. 받는 자 편에서는 그 이상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듯이 생각한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를 부인하고 그들이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는 일이 됨과 동시에 그분의 품성과 뜻의 표현이 되는 원칙에 조화되지 않으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품성과 뜻에 일치하는 성결을 이룰 수 있겠는가? GC 471.3
아무런 투쟁도, 극기도, 세속적인 어리석음도 버리는 일을 요구하지 않는 안이한 종교를 믿고자 하는 욕망이 필경 믿음만으로 이루어진 교리, 곧 통속적인 믿음의 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사도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약 2:14~24). GC 4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