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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증언 3 -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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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증언 3권의 역사적 배경

    1872년, 교회증언 3권의 첫번째 증언이 기록될 당시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는 모든 노력을 미국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그것도 주로 중부와 북동부의 주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안수와 신임서를 받은 86명의 목사들이 기별을 전파하며 사업을 지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판소 하나와 작은 의료 기관 하나를 소유하여 운영하고 있었는데, 두 기관 모두 미시간 주의 배틀크릭에 있었다. 사반세기 동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지적인 면에서, 또한 연합적인 면에서 신속히 발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먼저 그들은 말씀 속에 교훈되어 있는 교리들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으며, 다음에 그 기별을 출판해야 할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 후에 교회를 조직하는 일과 더욱 훌륭한 생활 방식을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교회 앞에는 발전을 위한 새로운 경험과 위대한 기회들이 있었다. 교회증언 3권의 권면들은 이런 일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었다.3T 3.1

    이전의 지극히 중요했던 25년의 세월을 통해서 제임스 화잇은 새로운 사업의 지도자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는 출판 사업을 시작했고, 교회 조직을 위해서 지칠 줄 모르고 수고했으며, 의료 사업을 일으키고, 경영과 편집 방면의 지도자로 서 있었다. 그는 길을 개척하였다. 그의 예리한 사업적 선견지명과 성장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전적인 헌신으로 인해 그는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이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성장하고 있는 교단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은 당연하였다. 본서는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압도하고 있는 부담으로부터 제임스 화잇을 풀어 주도록 본부에서 책임자들이 사업을 짊어지도록 호소하고 있다. 본서를 통해서 사업 확장, 책임의 증대, 젊은이들이 부담을 감당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말씀이 거듭거듭 언급되고 있다. 한 사람을 위대한 지도자로 바라보는 일의 위험성이 명백하게 설명되었다. 3T 3.2

    이 시대 동안의 체험은 그 어린 것에게, 나는 법을 가리키는 독수리의 것과 유사하였다. 먼저 어린 새끼를 등에 업고 날다가 다음에는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어미 새는 필요할 때는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제임스 화잇 자신의 건강 약화, 다른 사람들이 부담을 지기 위해 들어와야 한다는 그의 확신, 다른 곳에서의 임무 수행을 위해 그를 빈번하게 부르는 것, 이 모든 것은 배틀크릭의 행정적인 일들로부터 그를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화잇 목사 부부가 본부가 되는 도시의 요양원과 출판소 중간에 계속해서 그 가정을 갖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들이 자주 먼 곳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872년과 1873년 여름에 그들은 콜로라도의 산악 지대에서 휴식 기간을 가졌으며, 또한 캘리포니아에서 몇 개월을 보냈다. 1874년에 그들은 좀더 오랜 기간을 웨스트 코우스트에서 보냈는데, 그 때에 시조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이 본부에서 지도자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사업은 활기를 얻게 되었다.3T 3.3

    이 때는 또한 심각한 시기였다. 왜냐하면 교회가 지도력과 조직 문제에 있어서 그 길을 모색하고 있던 그 시기에 어떤 이들은 부당하게도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적절하게 조직된 권위를 거슬러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겪었던 체험을 반복하는 위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3권에는 이러한 경험의 시작부터 끝까지 단호하고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쳐 주는 권면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여기저기에 조직과 지도력에 관한 몇 가지 대원칙이 훌륭한 진술로 설명되어 있다. 3T 4.1

    본서의 배경이 되는 3년의 기간은 또한 건강 개혁의 교훈과 실천의 첫 10년이 마감되는 때였다. 극단으로 치우치는 한편과 무관심으로 치우치는 다른 한편을 막기 위하여 권면의 말씀이 주어졌다. 거듭해서 일반적인 기사들과 개인적인 권면들을 통해서 엘렌G.화잇은 절제와 올바른 생활의 대원칙들을 지적하고, 백성들에게 새롭고 도움이 되는 건강 개혁의 체험 속으로 전진하도록 호소하였다. 3T 4.2

    이 모든 것은 좀더 광범위한 확장의 기초석들을 놓는 것이었다. 신자들이 전 세계를 일터로 깨닫기 시작한 것은 이 기간의 일이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변화를 요구하였다. 그들은 요양원에 환자로 있는 동안에 접촉을 통해서 재림교를 받아들인 노련한 교사인 구들로에 H.벨 (Geodloe H.Bell) 이 배틀크릭에서 시작한 작은 교회학교의 중요성을 그 당시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이러한 학교 사업을 시작한 것은 1872년 초여름이었다. 그 해 조금 지나서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한 상급 학교 계획을 세우는 일이 시작되었다. 12월에 증언22호가 우리 백성들의 손에 쥐어졌고, 그들은 거기에서 그러한 학교와 기관의 운영법에 대한 호소로 증언이 시작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올바른 교육” 이란 표제 아래 30쪽에 걸쳐서 우리의 청년들을 양성하는 데 필요한 위대한 근본적 이상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가 교육적인 봉사 없이 어떻게 세상을 우리의 기별로 감쌀 수 있을 것인가? 학교가 없이 어떻게 교육적인 봉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본서 131-160쪽에 그토록 명백하게 제시된 교훈에 유의하고 그 도전을 받아들이게 된 우리 선조들은 배틀크릭 대학을 필두로 하는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대학의 주요 건물은 1875년 1월 4일에 헌당되었다.3T 4.3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 불과 수 개월 전에 우리의 지도적인 목사들 중 한 사람인 존 N.앤드루스 (John N.Andrews) 목사가 유럽에 기별을 전파하기 위한 개척자로서 스위스에 파송되었다. 몇 개월 전의 권면을 통해서 엘렌G.화잇은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서 타국으로 가야 할” 선교사들의 필요성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204쪽). 1874년 가을, 앤드루스 목사의 항해와 더불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다른 대륙으로 그들의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3T 5.1

    세월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진 교훈과 권면의 기별들이 나타난 시기는 흥미가 있다. 1859년부터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는 조직적인 헌금에 대한 자신의 청지기 직분을 인식하게 됨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주장하는 일에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맨 처음에 십일조, 수입의 십분의 일에 대한 온전한 의무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제3권 가운데 나오는 두 기사를 통해서 주님의 사자가 “수입의” “십분의 일” 남아 있는 “십분의 구” 에 대해서 기록함으로 십일조 의무를 계산하는 기초가 분명하게 되었다. 187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직적인 헌금에 대한 이런 폭넓은 개념이 교단 정책의 일부가 되었지만, 성장하고 있는 사업을 위해 꾸준하고도 대대적으로 필요한 수입을 확보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그러한 조처는 “십일조와 헌금”, “조직적인 헌금” 이라는 두 장의 권면에 그 뿌리를 박고 있는데, 이 말씀은 1875년 초에 출판되었다. 헌금에 대한 호소는 단지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헌금하는 사람의 품성을 계발하고 온전케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임을 보게 될 때 진정한 청지기 직분의 온전한 개념이 인식되었다.3T 5.2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적극적인 전도 계획은 다른 종교 집단들과 마찰을 빚었는데, 그들은 자주 우리에게 논쟁과 토론을 걸었다. 10년 전에 우리의 목사들 중 한 사람인 모지스 훌 (Moses Hull) 이 그러한 토론때문에 원수의 영역에서 제 길을 잃었다. 이제 또다시 권면의 말씀을 통해서 그런 논쟁적인 노력들의 위험성과 적은 결실을 지적함으로 지도를 받게 되었다. 제3권은 그러한 권면을 많이 담고 있다. 3T 6.1

    본서는 부유한 농부와 교육받지 못한 그의 아내에게 보내는 권면으로부터 목사와 행정자들을 위한 지시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화제를 취급하고 있다. 본서의 대부분은 일반적인 기사이다. 도처에서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 출판한 개인적인 기별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엘렌G.화잇이 기록한 것처럼 그것들 중 상당수는 “많은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대표하는” 체험과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3T 6.2

    소수의 뛰어난 계시가 본서의 더욱 폭넓은 부분의 기초를 형성한다. 이 기간에 두드러진 계시는 별로 흔하지 않았지만 좀더 포괄적인 것이 주어졌다. 1871년 12월 10일과 1875년 1월 3일에 주어졌던 포괄적인 계시들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나중의 것은 570쪽의 각주에 제임스 화잇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 앞의 것이 주어진 상황은 여기에서 좀더 자세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이 계시가 주어진 것은 버몬트 주의 보르도빌 (Bordoville, Vermont) 에서 였다. 12월 9일과10일에 그 곳에서 집회를 갖는다는 소식을 A.C.부르도우 (A.C.Bourdeau) 목사가 리뷰 출판소로 보냈는데 집회는 그의 집에서 열렸다. 여기에서 우리는 화잇 부인이 “특별히 그 교회를 위해서” 수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날 저녁 집회 때에 “특별한 증언들이 참석한 개인들에게 주어졌다. [말씀을 받은 이들이] 그것들을 시인할 때, 빛과 자유함이 임하였다.” 일요일 오후에 어느 신자의 두 아들과 그들 중 한 사람의 아내가 화잇 부인에게 작별을 하기 위해서 왔다. 그들은 “타락한 상태 가운데” 있었다. 이제 부르도우 목사는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제시한다.3T 6.3

    “이 때에 화잇 자매는 그들의 문제에 대해서 진정한 부담을 느꼈으며, 그들이 구원받기를 특별히 갈망하면서 그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다음에 그는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큰 열성과 믿음을 갖고 그들을 위해서 열렬하게 기도드렸다. 그들은 굴복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섬기기로 약속하였다. 주님의 영께서 점점 가까이 임하셨다. 화잇 자매는 자유로워졌으며, 곧 모든 사람이 기대하지 못했던 계시 가운데 들어갔다. 그는 이러한 상태 속에 15분간 머물렀다. 3T 7.1

    “그 소식이 퍼져 나가 순식간에 집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죄인들은 떨었으며, 신자들은 울었고, 타락했던 이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때 이후로 우리가 알게 된 바로는 그 일이 참석한 사람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집에 머물렀던 이들 중에 크게 확신을 얻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이전에 결코 그래 보지 못한 만큼 자기 자신을 보았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다가 오는 심판과 환난기에 대한 공포와 임박성, 교회의 세속적인 마음 상태, 자신들에게 형제 사랑의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 자신들은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상태 가운데 있다는 것 등이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 리뷰 앤드 헤랄드, 1871년 12월 26일. 3T 7.2

    제3권의 시대가 이러하였다. 3T 7.3

    엘렌G.화잇 저서 관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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