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Larger font
Smaller font
Copy
Print
Contents
구호봉사 - Contents
  • Results
  • Related
  • Featured
No results found for: "".
  • Weighted Relevancy
  • Content Sequence
  • Relevancy
  • Earliest First
  • Latest First
    Larger font
    Smaller font
    Copy
    Print
    Contents

    5 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참된 종교의 본질이 예시됨 —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참 종교가 제도나 신조나 의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 최대의 선을 베풀고 진정한 선으로 사랑하는 행위를 이루는 데 있다는 것을 보이셨다. … 이 교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당시보다 오늘날 더욱 필요하다. 이기심과 냉정한 형식주의는 사랑의 불길을 거의 꺼 버렸으며 품성을 향기롭게 할 은혜를 쫓아 버렸다.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이가 많다. 가족이나 이웃 사이에서, 교회에서나 또 어디에 있든지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남의 유익을 위하여 자아를 희생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 시대의 소망 2권 301, 308, 309WM 42.1

    내 이웃이 누구오니까? — 유대인 중에서 “내 이웃이 누구오니까?” 라는 문제가 끝없는 논의의 원인이 되었다. 저들은 이방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은 문제로 삼지도 아니하였다. 이들은 외인이요 원수였다. 그러나 저희의 같은 나라 사람들 사이와 계급이 다른 사람들 사이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제사장과 “랍비” 와 장로들은 누구를 이웃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저들은 저희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의식을 거행하는 일로 저희의 생애를 보냈다. 무식하고 침착성이 없는 사람들과 접촉하면 더럽힘을 받는다고 하고, 이것을 제거함에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저들은 이 “부정한 자” 들을 이웃으로 여기고 있었던가?WM 42.2

    그리스도께서는 이 문제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써 대답하셨다. 그는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은 다만 우리가 속한 교회의 교인이나 우리와 믿음을 같이하는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셨다. 그것은 인종이나, 피부색, 또는 계급적 차별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은 누구나 우리의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이다. 우리의 이웃은 역경으로 말미암아 매를 맞고 상함을 받은 모든 사람을 말한다. 우리의 이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모든 사람이다. — 실물교훈 393 WM 43.1

    비유로써 예시됨 — 그리스도께서는 큰 무리를 대상으로 말씀하시고 계셨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를 정죄할 어떤 구실을 그분의 입술에서 찾아내기를 바란 나머지 한 율법사를 보내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그분께 질문하게 하였다 (눅 10:25).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의 마음을 펼쳐진 책처럼 읽으시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눅 10:26) 고 반문하셨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 10:27). WM 43.2

    그리스도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28절) 고 말씀하셨다. 그 율법사는 자신의 대답으로 자기 자신을 정죄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29절) 라고 질문을 하였다. WM 43.3

    그리스도께서는 청중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사건을 이야기하심으로써 이 질문에 대답하셨다. — 원고 117, 1903 WM 43.4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 10:30) 고 말씀하셨다. WM 43.5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사람들은 유대의 광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길은 황무하고 돌이 많은 산골짜기 길이었고 거기에는 때로 강도가 출몰하여 포악한 사건이 발생하곤 하였다. 이야기 가운데 한 사람이 습격을 당하여 귀중품을 빼앗기고 거의 죽게 되어 길 가에 넘어졌던 곳은 바로 이러한 길이었다. 그가 이렇게 넘어져 있을 때에 한 제사장이 그 길로 왔다. 그는 매를 맞아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진 한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아니하고 떠나갔다. 다음에는 한 레위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는 호기심에서 발을 멈추고 그 강도 만난 사람을 자세히 보았다. 그는 자기가 마땅히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알았으나 그 일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차라리 그리로 오지 않았더면 그 상처당한 사람을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일이 자기에게 아무 관계될 문제가 아니라고 스스로 자기에게 말하면서 그도 또한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 버렸다.WM 44.1

    그러나 그같은 길로 지나가던 사마리아 사람은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는 다른 사람들이 거절한 일을 몸소 행하였다. 즉 그는 친절하게 그 상처 입은 한 사람을 구호하였다. 그는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고 하였다.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은 다 신앙이 깊은 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이었으나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가 참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나타내 보였다. 그 일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그러한 것처럼 사마리아인에게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정신과 행실에 있어서 그 자신이 하나님과 일치되어야 할 것임을 증거하였다. WM 44.2

    그리스도께서 이 교훈을 주시는 가운데 율법의 원칙을 직접적으로 고조하는 동시에 그 청중들에게 저희가 이 원칙들을 실행하는 일에 등한히 하였음을 지적하셨다. 그의 말씀은 너무도 분명하고 노골적이었으므로 청중들은 책잡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율법사는 그리스도의 교훈 가운데서 하나도 비평할 조건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편견은 없어졌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민족적 편견을 타파하지 못하였으므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명사를 써서 명예를 그에게 돌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하고 물었을 때에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라고 대답하였다.WM 45.1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도움이 요구되는 자들에게 그와 같은 부드러운 친절로 대하라.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율법을 완전히 지킨다는 것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 실물교훈 397, 398 WM 45.2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이웃임 — 우리의 동정과 우리의 친절한 봉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이웃이다. 고통당하고 빈곤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필요가 알려지면 가능한 한 그들을 구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 교회증언 4권 226, 227 WM 45.3

    동료들에 대한 인간의 의무는 이 비유에 의하여 영원히 해결되었다. 우리는 고통당하는 모든 경우를 돌봐 주어야 하며, 또한 바로 우리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곤궁한 자를 구제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들의 친척과 친구와,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애정을 나타내면서도, 부드러운 동정이 필요한 자들과, 친절과 사랑이 요구되는 자들에게는 친절과 이해심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하고 물어 보자. 우리의 이웃은 단순히 우리의 동료나 특별한 친구들만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우리의 교회에 속한 자나 우리와 생각을 같이 하는 자들만이 아니다. 우리의 이웃은 전 인간 가족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더욱 그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실제로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리뷰 앤 헤랄드 1895.1.1WM 45.4

    참된 종교가 잘못 전해 짐 —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성전 예배에 참석하였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 예배에 참석하는 일은 크고 고상한 특권이었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저희가 이렇게 높임을 받는 사람인고로 알지도 못하는 길가의 봉변당한 사람을 봉사하여 주는 일은 저희의 위신을 떨어지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저희는 하나님께서 저희로 동포들에게 복을 끼치는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게하는 이 특별한 기회를 등한히 하였다. WM 46.1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 저들은 저희의 의무를 뚜렷이 다른 두 종류로 구별하나니 그 하나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조절될 큰 일들이고 다른 하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소위 작은 일들인데 이 명령이 무시를 당한다. 이러한 범위의 일들은 사람의 돌아가는 대로의 기분에 맡겨 둔 바되어 그 생기는 충동과 기분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 성품은 훼손되고 그리스도교는 오해를 받게 된다. WM 46.2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봉사하는 일은 저희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은 심령의 성전이 황폐된 사람들을 무관심과 멸시의 눈으로 본다. 또 어떤 이들은 이와 다른 동기로써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다. 저희는 그리스도의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어떤 가치있는 사업을 하려고 애쓴다. 저희의 생각에는 저희는 선한 사업을 하고있는 사람인고로 궁핍하고 곤경에 처하여 있는 사람들은 돌볼 여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소위 큰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심지어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것까지라도 거리끼지 않는다. 저들은 가난한 자들을 곤란하고 괴로운 처지에 들어가게 하며, 저들의 권리를 빼앗으며, 저들의 요구되는 바를 돌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저희는 저희의 일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일은 근거있는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실물교훈 400, 401WM 46.3

    하나님의 율법의 광범위한 요구 — 고통당하는 이웃을 구제하여 주지 않고 버려 두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자비와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그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해주시고자 그를 그 길로 이끄셨다. 그러나 그 제사장은 긍휼을 베풀고 선을 행하는 거룩한 직분을 맡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편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의 성품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진상을 드러내었다. 그는 가식적으로 긴 기도를 드릴 수 있었지만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지킬 수 없었다. 레위인은 상처를 입고 고생하고 있는 자와 같은 동족이었다. 레위인이 그 길을 지날 때 인간의 재난에 그의 마음이 움직일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보기 위하여 온 하늘이 주시하였다. 그 사람을 보았을 때 그는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차라리 그 길로 오지 않음으로써 상처를 입고, 멍이 들고, 옷이 벗겨져,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 동료 인간의 도움을 요구하고 있는 그 사람을 보지 않았더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그 일이 자기에게 상관없는 일이며, 그러한 일로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자기 자신에게 납득시키면서 그 길을 지나쳐 버렸다. 율법의 해석자요, 신성한 직무의 봉사자로 주장하면서도 그는 다른 편으로 가버렸다. WM 47.1

    구름기둥 속에서 주님께서는 인간과 짐승에게 자비로운 행동을 할 것에 대하여 특별한 지시를 하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과 우리 이웃에 대한 편견 없는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동시에 그 율법의 더욱 광범위한 요구는 그들의 필요와 고통을 말로 나타낼 수 없는 말 못하는 짐승에게까지 미친다.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지니라” (신 22:4).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의 동료 인간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들에게까지 부드러운 동정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안에 거하시면, 그 사람은 고통을 만들기보다는 고통에서 구해 주는 사람이 된다. — 리뷰 앤 헤랄드 1895.1.1WM 47.2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이 잊혀짐 — 그 제사장과 레위인은 자기들의 냉담한 무관심에 대하여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자비와 친절의 법이 구약에 분명히 밝혀져 있었다. 그들이 냉정하게 지나쳐 버린 그 사람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자에게 봉사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사업이었다. 만일 그들이 존중하고 있노라고 주장한 법을 순종하였더면 그들은 이 사람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조상들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 그들에게 주신 율법의 원칙을 잊어버렸다. …WM 48.1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이것은 우리 모든 교회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만일 그 제사장과 레위인이 히브리 경전을 주의 깊이 읽었을 것 같으면 상처 입은 그 사람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 원고 117, 1903 WM 48.2

    영생을 얻는 조건 — 우리 구주께서는 영생을 얻는 조건에 대하여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상처를 입고 강도에게 약탈당한 그 사람은 우리의 관심과 동정과 애정의 대상이 되는 자들을 나타낸다. 만일 우리가 목격하는 빈궁한 자와 불행한 자들을 등한히 하면, 그들이 누구이든지 간에, 우리는 영생의 보증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게 하신 요구에 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에 대하여 동정과 긍휼의 마음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의 일가 친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십계명 중 여섯 계명이 포함되어 있는 두 번째로 중요한 계명을 범하는 자들임이 판명되었다. 율법 중 한 가지를 범한 자는 모두를 범한 죄가 있다. 사람들의 필요와 고통에 마음을 열지 않는 자들은 십계명의 처음 네 가지 명령에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서도 그들의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우상들이 마음과 애정을 채우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최상의 통치를 하시지 못한다. — 교회증언 3권 524WM 48.3

    그대의 기회와 나의 기회 —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저희 이웃을 사랑하는지의 여부를 보여 줄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과 그의 동료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와, 상처 입는 자와, 죽어가는 자들에게 자비를 보여 주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소홀히 한 일을 착수하여 인간에게 창조주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켜주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호소하신다. — 서신 113, 1901 WM 49.1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방법 —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할 때만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참 열매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면서 걸어가고 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 리뷰 앤 헤랄드 1894.6.26 WM 49.2

    Larger font
    Smaller font
    Copy
    Print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