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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증언 5 -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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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장 — 하나님께서 가납하시는 고백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28:13). 5T 635.1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 조건은 단순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이다. 주님께서는,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어떤 괴로운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께 우리의 심령을 고치거나 우리의 허물을 속하기 위하여 길고 지루한 순례를 하거나 고통스런 고행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자는 자비를 얻을 것이다. 이것은 타락한 사람이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분의 나라에서의 영생을 구하게 하고자 주어진 귀중한 약속이다. 5T 635.2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 다니엘이 하늘의 은총을 크게 입은 자였음을 읽게 된다. 그는 바벨론 왕궁에서 번영과 시련의 때를 막론하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존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낮추고 그의 죄와 백성의 죄를 고백했다. 그는 마음에 깊은 슬픔 가운데 이렇게 인정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데 있는 자나 먼 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단 9:5-7).5T 635.3

    다니엘은 자기 자신이나 그의 백성을 하나님 앞에 변명하고자 하지 않고, 심령의 겸손과 통회로 완전히 고백하고 그들의 허물의 결점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하고 그분의 호소가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한 나라에 대하여 취하신 그분의 처사를 공의롭다고 옹호했다. 5T 636.1

    이처럼 진실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회개와 고백은 오늘날에도 크게 필요하다. 자신의 허물을 인정함으로 심령을 하나님 앞에 낯추지 못한 자들은 가납받을 첫째 조건도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 만일 우리가 회개할 것이 없는 회개를 경험하지 않고 진정한 영혼의 겸비와 심령의 통회로써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우리의 죄악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결코 죄의 용서를 진정으로 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혀 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평안을 결코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죄를 도말받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즐겨 낮추지 않고 진리의 말씀의 조건에 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주어진 명백한 교훈이 있다. 죄의 고백은, 공적이거나 사적이거나를 막론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고 거리낌없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죄인에게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경박하고 부주의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죄의 가증한 성격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 강요되어서도 안 된다. 눈물과 슬픔이 섞인 고백, 심령의 깊은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고백은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8) 고 말한다.5T 636.2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의 바로의 고백과 같은 고백이 너무도 많이 있다. 그는 더 이상의 형벌을 받지 않기 위하여 그의 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재앙들이 그치자 즉시 그는 하늘을 반항하는 일로 되돌아갔다. 발람의 고백도 유사한 성격의 것이었다. 칼을 빼 들고 그가 가는 길에 서있는 천사에 놀란 그는 생명을 빼앗길까 두려워서 자기의 죄를 인정했다. 그의 고백에는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도 없고, 통회도 없고, 목적의 변동도 없고, 죄를 가증히 여기는 마음도 없고, 어떤 가치도 공효도 없었다. 가룟 유다는 그의 주님을 배반한 후, 제사장들에게로 돌아가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마 27:4) 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하나님의 자비를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죄의 무서운 장면과 미래의 무서운 심판 때문에 죄책감에 눌린 그의 심령에서 강요된 것이었다. 그에게 이르러 올 결과 때문에 그는 자신의 큰 죄를 이처럼 인정하게 되었다. 그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넘겨 주어서 조롱받고,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배신하여 악하고 무도한 자들의 손에 넘겨 준 데 대한 깊고도 마음을 찢는 슬픔이 없었다. 그의 고백은 다만 이기적이고 암담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에 불과했다. 5T 637.1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후, 그들은 수치와 공포감으로 충만해졌다. 처음에 그들의 유일의 생각은 하나님 앞에 그들의 죄를 어떻게 변명할 것이며 무서운 죽음의 선고를 어떻게 면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죄에 관하여 질문하시자, 아담은 그 죄를 부분적으로는 하나님께로, 부분적으로는 그의 배우자에게로 돌림으로 대답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2). 여자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13) 고 말하므로 그 책임을 뱀에게 돌렸다. “왜 당신이 뱀을 만들었습니까? 왜 당신이 뱀을 에덴 동산에 들어오도록 허락했습니까?” 이것들은 그의 죄를 변명하는 일을 암시한 질문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타락의 책임을 하나님께 지우고 있었다. 자기 정당화의 정신은 거짓의 아비에게서 나와서 아담의 모든 자녀들에 의하여 나타났다. 이런 종류의 고백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 앞에 가납될 수 없다. 참된 회개는 사람의 범죄를 자기 자신에게 지우고 기만이나 위선 없이 그것을 인정하게 할 것이다. 가련한 세리처럼, 눈을 하늘로 향하여 들지 못하고 그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18:13) 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허물을 인정하는 자들은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회개한 영혼을 위하여 자신의 피를 내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5T 637.2

    사람이 그의 창조주 앞에 머리를 숙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를 통한 용서를 간구하는 것은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범죄하고 반역함으로 상하게 한 분 앞에서 그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고상한 일이다. 그것은 그대를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높여 준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 지” (눅 18:14) 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은밀한 생각과 상상을 고백으로 털어 놓는 자는 자기의 인격을 떨어뜨리고 그의 영혼의 모든 본성을 저하시킴으로 자신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술과 방종으로 타락한 사제에게 그의 생애에 있는 죄를 펼쳐 놓음으로써 그의 품성의 표준은 낮아지고, 그는 결과적으로 더럽혀진다. 그의 생각 속에는, 사제가 하나님의 대리자로 서 있다는 뜻에서 하나님이 죄많은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낮추어진다. 세상을 더럽히는 악이 증가되어 마지막 멸망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는 원인 중 많은 부분은 타락한 사람에게 하는 이와 같은 저열한 인간의 고백인 것이다.5T 638.1

    사도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약 5:16) 고 말한다. 이 성경절은, 사면을 위하여 사제에게 가는 일을 지지하기 위하여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게 적용되면 안 된다. 그대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대의 잘못을 피차에 고백하라. 만일 그대가 친구나 이웃에게 잘못을 범했다면, 그대는 그대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고, 그대를 거리낌없이 용서해 주는 것은 그의 의무이다. 그 후에 그대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상처를 입힌 그 형제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에게 손해를 입힘으로 그의 창조주요 구속주에게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 경우는 전혀 사제 앞에 제시될 것이 아니고 유일한 참 중보자시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 시고, “우리 연약함을 체휼” (히 4:15) 하시고 모든 죄의 오점을 씻으실 수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5T 639.1

    다윗이 우리아와 그의 아내에게 범죄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탄원했다. 그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시 51:4) 라고 부르짖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범한 모든 잘못은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다윗은 용서를 구하되 사제에게가 아니고 사람의 창조주에게 구한다. 그는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1) 라고 기도한다. 5T 639.2

    참된 고백은 언제나 구체적이며 개개의 죄들을 인정한다. 그 죄들은 오직 하나님 앞에만 제시되어야 할 그런 성격의 것일 수도 있고, 그 죄 때문에 고통을 받은 개인들 앞에 고백되어야 할 잘못들일 수도 있고, 회중에게 알려져야 할 일반적인 형태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고백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그대가 범한 바로 그 죄들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5T 639.3

    이스라엘이 암몬 사람들에게 압제받을 때 택한 백성은 참 고백의 성격을 알려 주는 호소를 하나님 앞에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고백과 기도에 일치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 겼다. 그러자 여호와의 크신 사랑의 마음이 근심하였고,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삿 10:10-16).5T 640.1

    진정한 회개와 개혁이 없으면 고백은 하나님께 가납될 수 없다. 생애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거슬리는 모든 것은 버려져야 한다. 이것은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의 결과가 될 것이다. 바울은 회개의 역사를 이렇게 말한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후 7:11). 5T 640.2

    사무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방황했다. 그들은 죄의 결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국가를 통치하는 그분의 능력과 지혜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그분의 사업을 옹호하고 방어해 주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 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우주의 통치자를 등지고 그들 주변에 있는 국가들처럼 통치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평안을 찾기 전에 그들은 이런 분명한 고백을 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삼상 12:19). 그들이 깨달은 바로 그 죄가 고백되어야 했다. 그들의 배은 망덕은 그들의 심령을 눌렸고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다.5T 640.3

    죄가 도덕적 지각을 마비시켜 버리면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가 범한 악의 극악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각성시키는 성령의 능력에 굴복지 않는 한, 그는 그의 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눈먼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의 고백은 진실하지도 열렬하지도 않다. 그의 범죄를 인정할 때마다 그는 그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첨가하고, 만일 특수한 환경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가 비난받고 있는 이 일도 저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와 겸비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예증들은, 고백의 정신에는 죄에 대한 변명이나 자기 변호에 대한 시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5T 641.1

    바울은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죄를 가장 어두운 색깔로 묘사하고, 그의 범죄를 경감시키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대제상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행 26:10, 11). 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고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5T 641.2

    진정한 회개로 부드러워진 겸손하고 통회한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갈바리의 희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아들이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그의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가져 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5T 6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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