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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증언 1 -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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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장 — 경험의 대요

    1866년 12월 19일에서 1867년 4욀 25일까지.

    나는 남편이 무활동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동안, 오래 된 그의 질병에서 회복될 수 없다는 것과, 내가 나가서 백성들에게 증거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나는 당시에 우리가 교인으로 소속되어 있던 배틀크릭 교회의 판단과 충고와는 반대로, 겨울의 가장 혹독한 추위 속에서 심히 허약한 상태에 있는 남편과 함께 북부 미시간을 여행하기로 작정했다. 특별히 배틀크릭의 사업을 지도하는 자들을 포함한 교회의 영향에 대하여 나는 홀로 반대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큰 모험을 결정하는데는 적지 않은 도덕적 용기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요구되었다. 1T 570.2

    그러나,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으며, 사단이 내가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자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우리가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고, 내가 일을 하지 않고 좀더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귀중한 영혼들이 잃어버린 바 될 것을 두려워했다. 일터에서 물러나서 더 이상 머물러 있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더 나쁜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나간다 해도 죽기밖에 더하랴. 그리하여, 1866년 12월 19일, 우리는 눈보라 속에서 미시간 주 오타와 카운티 라이트를 향하여 배틀크릭을 떠났다. 나의 남편은 지루하고 고된 90마일의 여행을 내가 염려한 것보다 훨씬 더 잘 견디어 냈다. 그리하여, 루트형제 가정에 있는 우리의 옛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우리가 배틀크릭을 떠나던 때와 마찬가지로 쾌활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이 귀중한 가족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마치 그리스도인 부모가 병약한 자녀들을 보살피는 것과 같은 부드러운 보호를 받았다. 1T 570.3

    우리는 이 교회가 매우 낮은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교인들의 대부분에게 분열과 피차간 불만의 씨가 깊이 뿌리 박고 있었다. 그리고, 세속적 정신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들은 낮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전도자들의 활동의 혜택을 좀처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 양식에 굶주려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남편의 질병 이래 처음으로 효과적인 활동올 시작했다. 남편은 비록 심히 약한 상태에 있었지만, 지나간 날들처럼 여기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안식일과 일요일 오전에 30분내지 40분씩 이야기하고, 나는 나머지 시간을 채우곤 했다. 그리고, 매일 오후에 약 한 시간 반씩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최대의 주의를 기울여서 우리의 말을 들었다. 나는 남편이 차츰 튼튼해지고, 더욱 명석해지고, 그가 취급하는 문제에 더욱 몰두되는 것을 보았다. 한때는 그가 평상시처럼 그에게 맡겨진 사업의 책임을 느끼고 한 시간 동안 분명하고 힘있게 이야기했으므로, 나는 감사의 마음을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서 거의 반 시간 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에게 이야기하고자 애를 썼다.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의 서광을 보증해 준 것으로 느꼈다.1T 570.4

    우리는 이 사람들과 함께 6주일 동안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25회, 나의 남편은 12회 이야기했다. 이 교회에 대한 우리의 활동이 진전됨에 따라 개인적 상황들이 내 앞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그들을 위한 증언들을 모두 100페이지쯤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머물러 있는 루트 형제의 집으로 그 사람들이 왔을 때 그들을 위한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그들 중 어떤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집에서, 그리고 특별히 예배당에서 집회를 통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런 종류의 활동에서, 나는 남편이 큰 도움이 된 것을 발견했다. 과거에 나와 더불어 활동할 때, 이런 종류의 활동에서 얻은 오랫동안의 그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이 일에 자격을 갖추게 했다. 그 사업을 다시 착수한 지금, 그는 지난날의 명석한 사고력, 훌륭한 판단, 잘못한 자들을 다룸에 있어서의 성실 등 모든 것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상, 우리 목사들 중 두 사람일지라도 그가 나를 도와 준 만큼 도울 수는 없었다. 1T 571.1

    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위대하고 훌륭한 사업이 이루어졌다. 잘못이 자유롭고 충분하게 고백되고, 연합이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사업에 임하였다. 나의 남편은 조직적 헌금 제도를 우리의 모든 교회에서 적용해야 할 형태로까지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 그의 노력의 결과로, 그 교회에서 해마다 약 300달러씩 금고에 넣을 정도가 되었다. 그 교회에서 나의 증언들 중 어떤 것, 특별히 의복 문제에 관하여 어려움을 당해 온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완전히 해결을 보게 되었다. 건강과 의복의 개혁이 채택되어, 많은 액수의 돈이 건강 기관을 위하여 거출되었다.1T 571.2

    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사업이 발전되어 가고 있을 때, 불행히도 뉴욕 주 출신의 한 부요한 형제가 배틀크릭을 방문하여, 우리가 교회와 배틀크릭의 사업의 선두에 서 있는 자들의 의견과 충고를 외면하고 출발했다는 것을 알고서 라이트를 찾아왔다. 그는 우리가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자들 앞에서까지, 나의 남편이 부분적인 정신 이상 상태에 있으므로 그의 증언은 비중을 둘 만한 것이 못 된다고 말하였다. 이 문제에 있어서의 그의 영향은, 그 교회의 장로인 루트 형제가 내게 한 말에 의하면, 사업을 최소한 두 주일 뒤로 물러가게 했다. 나는,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맹목적이고 냉혹한 상태가 어떻게, 기진 맥진한 주님의 종들이 중화시키는 데 여러 주일이 걸릴지도 모를 영향을 한 시간에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바이다. 우리는 부요한 형제들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었는데, 사단은 이 부요한 형제가 바로 그가 이용할 사람임을 깨달았다. 주님께서,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곳으로 그를 인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두 주일 동안 가장 힘든 노력을 더욱 기울이고, 또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는 이 그릇된 영향을 제거해 버리고,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들에게 보내셨다는 완전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더한층 노력한 결과, 얼마 후에 와그너 형제에 의하여 일곱 사람이, 그리고 우리가 그 교회를 두번째 방문한 7월에는 나의 남편에 의하여 두 사람이 침례를 받았다. 1T 572.1

    뉴욕 주에서 온 그 형제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배틀크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라이트에서의 훌륭한 사업을 올바르게 보고하거나 배틀크릭에 있는 교회의 감정을 호전시키기 위한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때 이래로 속속 드러난 바와같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행동 중 가장 불리한 점을 들어 대화의 주제로 삼는 일에서 피차간의 기쁨을 누리는 중에 교회와 그는 다 같이 손해를 입은 것 같다. 이처럼 비참한 일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에,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1T 573.1

    나는 위풍 당당한 모습과 위엄 있는 태도를 한 사람과 함께 배틀크릭을 방문하고 있었다. 꿈에, 나는 우리 형제들의 집들 주변을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고자 했을 때, 우리는 열렬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음성을 들었다. 나의 남편의 이름이 빈번히 열거되었다. 나는 우리의 가장 든든한 친구들이라고 공언해 온 자들이 나의 남편의 정신적·육체적 힘이 크게 마비된 상태에 빠졌던 당시, 곧 심한 고통 증에 있을 때 일어났던 장면들과 사건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슬퍼하고 놀랐다. 배틀크릭의 형제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말했는가 하면, 앞에서 언급한, 뉴욕에서 온 믿는 자로 공언한 그 형제는 배틀크릭에 있는 자들이 모르고 있는 사건들을 열렬한 태도와 과장된 견해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는 슬퍼졌다. 나는 괴롭고 마음이 아파서 꿈속에서 거의 쓰러지게 되었다. 그 때에, 나를 수행하는 자의 손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너는 듣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1T 573.2

    우리가 가까이 간 여러 집들에서는 동일한 문제가 화제의 주제가 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현대 진리였다. 나는 말했다. “아,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나는 번영 중에 있을 때 우리의 친구요, 고난과 고통과 역경 중에 있을 때 우리의 변함없는 친구로 간주해 온 자들의 마음속에 이런 감정이 있는 것을 몰랐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는 그 사람들을 가장 선량하고 가장 진실한 우리의 친구로 여겨 왔다.” 1T 573.3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이런 말을 반복했다. “만일, 그들이 오로지 그들의 구속주에 관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또한 동일한 열성과 열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과 무사욕한 자비와, 그분의 긍휼이 풍성한 용서와,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 어린 친절과, 그분의 오래 참으심과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깊이 생각했을 것 같으면, 그 열매가 얼마나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되었을까!” 1T 574.1

    그 후에 나는 말했다. “나는 슬프다. 나의 남편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무거운 짐에 눌려서 쓰러질 때까지 그 짐을 지고 견디었다. 그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약해지고 부서졌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으로 그를 일으켜서 그가 다시 말할 수 있게 해주시자, 말과 행동을 모아서 그것들을 이용하여 그의 감화를 소멸시키고자 하는 것은 잔인하고 악한 것이다.” 1T 574.2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은 말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생애의 특성이 생각의 주제가 되는 대화는 정신을 새롭게 해주고, 거룩함과 영생의 열매를 맺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의 말씀을 인용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 4:8). 이 말씀은 나에게 너무도 감명이 깊었으므로, 나는 그 다음 안식일에 그것에 관하여 말하였다. 1T 574.3

    라이트에서의 나의 활동은 매우 피곤한 것이었다. 나는 낮에 남편을 간호하느라고 많은 일을 하였고, 때로는 밤에도 그러했다. 나는 그에게 목욕을 시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을 타게 하고, 춥거나 바람이 불거나 쾌청하거나 간에 하루 두 번씩 그와 함께 산보를 했다. 그가 리뷰지에 실을 보고문을 작성할 때, 나는 펜을 들고 받아 썼다. 그러면서도 또한 방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자주, 그리고 길고 열렬하게 이야기하는 일 외에, 개인적 증언에 해당되는 수많은 글과, 증언 11호의 대부분과, 또한 많은 편지를 썼다. 루트 부부는 나의 시련과 활동에 깊이 동정하고, 가장 부드러운 염려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기 위하여 진력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은혜와 영적 힘은 물론, 광주리와 창고와 건강에 축복해 주시도록 자주 기도 드렸다. 나는 특별한 축복이 그들을 뒤따를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그들의 집에 왔을 때 그들은 병으로 고생했지만, 나는 이제 루트 형제를 통하여 그들이 이전보다 더 좋은 건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육신적 번영의 항목들 가운데서 그는, 이웃 사람들의 밭에서는 평균 한 에이커당 7부셀에 불과한 수확을 거두었지만, 그의 밀밭에서는 한 에이커당 27부셀, 어떤 밭에서는 40부셀의 수확을 거두었다고 알려 준다 (1부셀은 약 36리터, 2말 정도임 — 역자 주).1T 574.4

    1867년 1월 29일에, 우리는 라이트를 떠나서 40마일의 거리가 되는 몬트캄 카운티, 그린빌로 향했다. 그 날은 가장 혹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메이나드 형제의 집에서 추위와 폭풍을 피하게 되어 기뻤다. 사랑하는 그 가족은 마음을 다해 우리를 환영하고 그들의 집으로 우리를 맞아들였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6주일간 머물면서 그린빌과 올리언즈에 있는 교회들을 대상으로 활동했다. 그 동안에, 우리는 메이나드 형제의 안락한 가정을 우리의 본부로 삼았다. 1T 575.1

    사람들에게 말할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자유를 주셨다. 나는 모든 활동에 그분의 도우시는 능력이 같이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남편의 활동과 관련해서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할 증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했을 때, 나의 믿음은, 남편이 건강을 얻어서 하나님의 일과 사업에 가납되는 활동을 할 것으로 굳어졌다. 그의 활동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고, 그는 사업에 있어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가 없이는 조금밖에 성취할 수 없었지만, 그의 도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는 내게 맡겨진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남편이 하는 모든 활동에 그를 도우셨다. 자신의 연약함에 상관없이, 그가 하고자 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는 힘을 얻고 모든 노력이 향상되었다. 남편이 육체적·정신적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남편곁에 서서, 하나님의 사업에 새롭고 더욱 열렬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기회를 다시 얻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마지막 사업에 함께 일할 것을 기대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가 병으로 쓰러지기 전에, 사무실에서 차지한 위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를 그곳에 가두어 놓았었다. 그리고, 그가 없이는 여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필연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말씀과 교리를 통하여 활동하고, 특별히 전도의 일에 자신을 더욱 바치게 되자, 하나님께서 이제 그를 형통하게 하심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다시는 사무실에 갇혀 있지 않고 나와 함께 여행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남은 백성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엄숙한 증언을 증거할 수 있게 해주실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1T 575.2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낮은 상태를 민감하게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매일 나의 능력의 한계까지 이르게 된 것을 깨달았다. 라이트에 있는 동안, 우리는 11호를 위한 나의 원고를 출판소에 보냈다. 그리고, 나는 집회가 끝나면 12호를 위한 집필에 거의 모든 시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라이트에 있는 교회를 위하여 활동하는 동안, 나의 육체적·정신적 힘은 심히 혹사당하였다. 나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런 기회를 얻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한 주일에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개인적 증언을 여러 페이지씩 기록하고 있었다. 영혼들에 대한 무거운 짐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내가 느낀 책임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나는 매일 밤 불과 몇 시간밖에 수면을 취할 수 없었다. 1T 576.1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동안, 나는 배틀크릭에서 보낸 낙담케 하는 성격의 편지들을 받았다.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나는 짧은 한순간 나의 생명력이 마비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마음의 번민을 안겨 주는,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 억압을 느꼈다. 나는 3일 밤을 거의 잠들 수가 없었다. 나의 생각은 번민되고 괴로웠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남편과, 우리와 정 (情) 을 같이 나누는 가족에게 나의 감정을 숨겼다. 내가 아침 저녁의 예배 시간에 가족과 연합하여, 무거운 짐을 져 주시는 위대하신 분께 나의 짐을 내어 놓고자 구할 때, 아무도 나의 수고와 마음의 부담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탄원은 번민으로 찢어진 마음에서 나왔고, 나의 기도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조리가 없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피가 뇌 속으로 몰려가 빈번히 비틀거리게 하고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만들었다. 나는 자주 코피를 흘리게 되었는데, 특별히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한 후에 그러했다. 나는 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없는 증언들을, 그들을 위하여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게 지워진 염려와 책임의 짐을 회피할 수 없었다.1T 576.2

    나는, 건강 기관에 관하여 내게 보여진 것을 기록할 때까지 11호의 출판을 지연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을 알려 주는 편지를 또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 기관의 책임을 진 자들이 돈이 크게 부족하므로 형제들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나의 증언의 영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기관에 관하여 내가 본 부분을 기록했다. 뇌의 혈압 때문에, 전체의 문제를 다 해낼 수 없었다. 12호가 그처럼 오래 지체될 줄 알았을 것 같으면, 나는 11호에 포함된 문제의 그 부분을 어떤 경우에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며칠 동안 쉬고 나면 글 쓰는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섭섭하게도, 나는 뇌의 상태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반적 증언이거나 개인적 증언이거나를 막론하고, 그것들을 쓴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니, 나는 그 증언들을 쓸 수 없게 된 일 때문에 계속적으로 괴로워하였다. 1T 577.1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배틀크릭으로 돌아가, 길이 진흙 투성이의 어려운 상태가 되어 있는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12호를 완성하기로 작정했다. 나의 남편은, 배틀크릭에 있는 형제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이루고 계신 일을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자 매우 열망했다. 나는 내가 쓴 것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길을 떠났다. 도중에, 우리는 오렌지에서 두 번의 집회를 열었는데, 교회가 유익을 얻고 격려를 받은 증거를 보게 되었다. 우리 자신도 주님의 영으로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 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내가 배틀크릭에서 출입문 옆에 있는 유리창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일단의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집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엄숙하고 단호해 보였다. 그들은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응접실 문을 열고자 돌아섰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장면은 바뀌었다. 그 무리들은 이제 천주교 행렬의 모습을 나타냈다. 한 사람은 손에 십자가를 들고, 다른 한 사람은 갈대를 쥐고 있었다. 그들이 접근하자, 갈대를 쥐고 있는 자가 집을 빙 둘러 원을 그리고, 다음의 말을 세 번 되풀이했다. “이 집은 법률의 보호를 박탈당했다. 물건들은 몰수되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거룩한 명령을 거스려 말했다.” 공포가 내게 엄습했다. 나는 집에서 달려나가 북쪽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일단의 사람들 사이에서 내 자신을 발견했는데, 그들 중 더러는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배반당할 것이 두려워서 그들에게 한마디도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느 곳을 향하더라도, 열광적이고 호기심에 찬 눈들과 마주치지 않고 울고 기도할 수 있는 한적한 장소를 찾고자 노력했다. 나는 자주 이렇게 되풀이했다. “내가 만일 이것을 이해할 수만 있었을 것 같으면! 만일 그들이 내가 무엇이라고 말했으며 무엇을 했는지 내게 말해 줄 것 같으면!” 1T 577.2

    나는 우리의 물건들이 몰수당하는 것을 보자 울면서 큰 소리로 기도했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내게 대한 동정과 자비의 흔적을 읽고자 노력했다. 여러 사람들의 얼굴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주시할 것을 두려워하지만 않을 것 같으면 나에게 이야기하고 나를 위로해 주리라고 내가 생각한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주목해 보았다. 나는 군중에게서 피해 가고자 한 번 시도해 보았으나, 내가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의향을 숨겼다. 나는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그들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다는 것을 내게 말해 주기만 한다면!” 같은 방에 있는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내가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듣고 나를 깨웠다. 나의 베개는 눈물로 젖어 있었고, 슬프고 울적한 마음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1T 578.1

    하웨 부부가 웨스트 윈저까지 우리와 동행했는데, 우리는 그 곳에서 카맨 부부의 영접과 환영을 받았다. 안식일과 첫째 날에 우리는 부근에 있는 여러 교회에서 온 형제 자매들을 만나, 그들에게 우리의 증언을 자유롭게 전하게 되었다. 생기를 주는 주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사업에 특별한 흥미를 느낀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우리의 집회는 훌륭했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얻고 크게 용기를 얻었다고 간증하게 되었다.1T 578.2

    며칠 후, 우리는 3개월간의 부재 후 다시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 자신들을 발견했다. 3월 16일 안식일에 나의 남편은, 리뷰 지 편집장이 속기로 기록하여 29권 18호에 출판한 “성화” 에 관하여 설교했다. 그는 또한 오후와 첫째 날 오전에 분명한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평상시와 같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증언했다. 23일 안식일에, 우리는 뉴튼에 있는 교회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다음 안식일과 첫째 날에는 콘비스에 있는 교회를 대상으로 활동했다. 우리는 북쪽으로 돌아서 30마일을 가고자 작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도로 사정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남편은 배틀크릭에서 받은 냉대에 크게 실망하고, 나 역시 슬퍼졌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봉사를 원한다는 더 좋은 증거를 보여 주기 전에는 이 교회에 대하여 증거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도로 사정이 개선되기까지 콘비스와 몬테레이에서 활동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두 안식일을 계속해서 콘비스에서 보냈다. 그리하여, 오늘날 가장 좋은 열매가 나타난 바와같이 훌륭한 사업이 이루어진 증거를 보게 되었다. 1T 579.1

    나는 마치 위로의 말과 용기가 필요한 피곤한 아이처럼 배틀크릭의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나는, 3개월 전에 우리가 집을 떠나던 그 때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연합 가운데 있었던 우리의 형제들에게 우리가 크게 냉대를 받은 것을 말하기가 괴롭다. 배틀크릭에서 보낸 첫날 저녁에 나는, 내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한편 어떤 큰 집회에 참석할 목적으로 여행을 했기 때문에 매우 지쳐 있는 꿈을 꾸었다. 자매들은 나의 머리를 손질하고 나의 옷을 매만지고 있는데, 나는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나의 겉옷이 벗겨져 나가고 그 대신에 낡은 넝마, 침대용 이불 조각들을 이어 함께 꿰맨 넝마가 입혀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화를 내었다. 나는 말했다. “너희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하였느냐! 누가 나의 겉옷을 벗기고 그 대신 거지의 넝마를 입히는 수치스런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넝마를 찢어서 던져 버렸다. 나는 슬퍼졌다. 그래서, 괴로워하면서 부르짖었다. “내가 23년 동안 입었지만 한순간도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은 나의 겉옷을 가져다 달라. 너희들이 그 옷을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백성들에게 호소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나를 도와 내가 23년 동안 입었던 나의 옷을 내게 돌려줄 것이다.” 1T 579.2

    나는 이 꿈이 성취된 것을 보았다. 배틀크릭에서, 우리를 해롭게 하기 위하여 퍼뜨린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 소문은 사실상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건강 기관에 임시로 머물러 있는 어떤 사람들과 배틀크릭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미시간 주와 다른 주들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들에 관한 공포와 의심과 그릇된 암시를 나타내게 되었다. 나는 내가 존경해 오던 한 동역자로부터, 그들이 도처에서 내가 배틀크릭 교회를 욕한 내용들을 듣고 있다며 비난할 때 슬픔으로 가슴이 메어졌다. 나는 너무도 슬퍼서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강한 비난의 정신을 발견했다. 어떤 감정이 존재해 있는지 완전히 깨달았을 때, 우리는 사향심 (思鄕心) 을 느꼈다. 우리는 너무도 크게 실망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나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 중 두 사람에게, 우리가 영접과 격려 대신에 불신과 강한 냉대를 받았을 때 평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과로와 헌신으로 그들 가운데서 쓰러진 자들에 대하여 취할 태도가 이것이었는지 배워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우리가 배틀크릭에서 이사하여 더욱 한적한 집을 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1T 580.1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정신적 슬픔을 안고 나는 집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상처를 받을 것이 두려워서 교회에서 어딘가로 가기를 무서워했다. 어떤 사람도 나의 감정을 풀어 주고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나는 여러 경험 있는 형제 자매들을 함께 모아 놓고 내게 대하여 떠도는 소문에 대처하는 것이 의무임을 느꼈다. 침울하고 풀이 죽고 번민까지 하면서, 나는 내가 그때 이래 일년 동안 동쪽으로 여행한 이야기와, 그 여행에서 괴로운 역경을 겪은 것을 술회하면서 나에 대한 비난에 대처했다.1T 580.2

    나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과 사업에 관련된 내 자신의 처지에서 볼 때 나와 추호의 감정적 소외가 없는 배틀크릭 교회에 대하여 경솔하게 말할 수 있겠는지 판단해 보라고 호소했다. 하나님의 일과 사업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들의 관심과 마찬가지로 컸다고 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경험과 생애는 그 사업과 함께 짜여져 있었다. 나는 그 사업과 상관없는 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그 사업에 모든 것을 바쳤으며, 그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어떤 희생도, 할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큰 것은 없었다. 나는 사랑하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에서 요구하신 나의 의무를 수행하는 일에서 물러가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모성애 (母性愛) 는 지금껏 생존한 모든 어머니의 가슴속에서처럼 나의 가슴속에서도 강하게 고동쳤다. 그럴지라도, 나는 젖먹이 아이들을 떼어서 다른 사람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하도록 맡겼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관심과 헌신에 대하여 분명한 증거를 보였다. 나는, 나의 사업을 통하여 그것이 내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보여 주었다. 어떤 사람들이 내 자신의 것보다 더 큰 증거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진리의 사업에 열성적이었던가? 나는 더욱 더 그러했다. 그들이 그 사업에 헌신적이었던가? 나는 그 사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보다 더 큰 헌신을 입증할 수 있다. 그들이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했는가? 나는 더욱 더 그러했다. 나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는 비난과 고난과 역경을 회피하지 않았다. 질병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친척들이 내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때, 나의 남편은 그의 팔로 나를 안아 배와 차에 태웠다. 한번은 밤중까지 여행한 후에, 돈 한푼 없이 보스턴 시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 적도 있다. 두서너 번, 우리는 믿음으로 7마일이나 걸어간 적도 있다. 우리는 힘이 미치는데까지 걸어간 다음에, 땅에 무릎을 꿇고서 앞으로 전진할 힘을 얻고자 기도했다. 힘이 주어졌고, 우리는 영혼들의 유익을 위하여 열렬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장애도 우리를 의무에서 물러서게 하거나 사업에서 떠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1T 581.1

    이 모임에 나타난 정신은 나를 크게 괴롭혔다. 거기에 참석했던 자들이, 나를 잘못 판단했다는 것과, 나에 대한 그들의 의심과 비난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인정함으로 나의 괴로움을 제거해 주고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무거운 짐을 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나를 정죄할 수 없었지만 나의 짐을 제거해 주고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1T 582.1

    15개월 동안, 나의 남편은 너무도 허약했기 때문에 그의 시계나 지갑을 지참하고 다니지 않았으며, 외출할 때 그 자신의 말을 몰고 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금년에는 그가 시계와 지갑을 가지게 되었는데, 지갑은 우리의 많은 지출 때문에 비었고, 또한 그 자신의 말을 몰게 되었다. 병으로 있는 동안,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거의 1,000달러에 해당되는 돈을 형제들에게서 받기를 거절하면서, 그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그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마침내, 우리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나의 남편은, 의존하기 전에 우리가 없이도 지낼 수 있는 것을 먼저 파는 것이 그의 의무임을 느꼈다. 그가 사무실에 가지고 있던 몇가지 것들을 배틀크릭에 있는 형제들에게 흩어 두었지만, 별반 가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도 수집하여 팔았다. 우리는 거의 150불에 해당하는 가구를 처분했다. 나의 남편은 집회소를 위하여 우리의 소파를 팔아서 그 값에서 10불을 헌금으로 바치고자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 매우 값진 우리의 유일한 암소가 죽었다. 나의 남편은 그 때 처음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느끼고 한 형제에게, 교회가 암소의 손실을 메꾸어 줄 뜻이 있다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의 짤막한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것에 관하여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은 없고, 다만 나의 남편이 돈 문제로 머리가 돌았다는 비난을 받은 것뿐이었다. 형제들은, 돈이 너무도 필요하여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으면 그가 결코 도움을 구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요구하자, 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판단하는 자들은 그 문제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다만 궁핍과 심한 고통 중에 있는 우리를 해치기 위하여 그것을 이용한 데 불과했다.1T 582.2

    이 집회에서 나의 남편은, 이런 성격에 속한 몇 가지 일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겸손하게 고백했는데, 그것은 그가 형제들을 두려워하고, 올바른 관계를 이루어 교회와 연합되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고 또 하지도 않을 몇 가지의 일들이었다. 이렇게 되자, 그에게 손해를 입히고 있던 자들은 그를 분명히 멸시하게 되었다. 우리는 바로 땅 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겸손해지고,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몬테레이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출발했다. 여행 도중에 나는 가장 심한 정신적 번민을 겪었다. 나는 우리 형제들이 우리의 사업에 관하여 이해하지 못한 이유를 스스로 알아보고자 애를 썼다. 나는, 우리가 그들을 만날 때 우리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고,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은 그분의 겸손한 종들인 우리 속에 계신 영과 일치할 것이므로 사상과 감정의 연합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분명히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는 불신을 당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관찰되어, 내가 지금껏 경험한 가장 큰 어려움의 원인을 초래했다. 내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1865년 12월 25일에 로체스터에서 받은 이상의 일부가 번개처럼 나의 마음에 떠올랐으므로 나는 즉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1T 583.1

    나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가까이 서서 하나의 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포도나무가 그 나무들을 타고 올라가서, 맨 꼭대기에서 그것들을 덮고 그늘진 휴식처를 이루어 놓고 있었다. 얼마 후에, 나는 그 나무들이 마치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포도나무의 가지들이 하나씩 지주 (支柱) 에서 흔들려, 마침내 낮은 가지들을 붙들고 있는 몇 개의 덩굴손 외에는 모두 나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때에, 한 사람이 와서, 남아서 붙들고 있는 포도나무의 덩굴손을 절단해 버렸다. 그러자, 그 포도나무는 땅 위에 쓰러졌다. 1T 583.2

    포도나무가 땅 위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마음의 고통과 번민은 표현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불쌍히 여기는 눈으로 그것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 나무를 일으켜 세워 주는 친절한 손이 있기를 열렬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없었다. 나는 왜 그 포도나무를 일으켜 주는 손이 없는지 물어 보았다. 그 때에 나는, 한 천사가 분명히, 버려진 그 포도나무를 향하여 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손을 펴서 포도나무 아래에 넣더니 그것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하늘을 향하여 일어서라. 너의 덩굴손으로 하나님을 감으라. 너는 인간의 지주에서 흔들려 떨어졌다. 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설 수 있고, 인간의 도움 없이 무성해질 수 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그리하면, 결코 헛되이 의지하지 않게 되고, 흔들려 떨어지지도 않게 된다.” 등한히 취급된 포도나무가 보호를 받은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고 기쁨이 충만해졌다. 나는 천사를 돌아보고,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그대는 이 포도나무이다. 그대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대는 그 포도나무의 비유를 충분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환난의 때에 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때부터 나는 나의 의무에 대하여 확고해지고, 사람들에게 나의 증언을 제시하는 일에 그보다 더 자유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주님의 팔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면 바로 이 집회에서였다. 나의 남편은 설교하는 일에 있어서 자유로웠고 또한 명쾌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훌륭한 집회를 가졌다고 간증했다.1T 583.3

    우리가 몬테레이에서 돌아온 후, 나는, 형제들이 나의 감정을 풀어주고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하나의 집회를 갖는 것이 의무임을 느꼈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앞으로 전진하고, 다시 나의 의중을 표현함으로, 우리를 해치기 위하여 유포된 의심과 소문에서 벗어나고자 작정했다. 나는 나의 증언을 제시하고, 그 곳에 참석한 어떤 사람들의 과거의 역사에서 나에게 보인 것들을 말하고, 그들의 위험을 경고하고,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책망했다. 나는 가장 불쾌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개인들이 이상을 통하여 내 앞에 제시될 때는, 그들과 관련되어 나에게 보인 것은 개인적 성격, 은밀한 죄를 책망하는 것에 속한 것들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한 잘못에 관하여 여러 달 동안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했다. 나의 형제들은 이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하나님께 가납되는데 관하여 의심과 또한 낙담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들을 때, 마치 내가 그들이 어려움에 빠진 데 대하여 책망을 받아야 할 것처럼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진다. 이처럼 나를 비난한 자들은 그들이 무엇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나의 행동에 대하여 심판관으로 앉아 있는 것에 대하여 항의했다. 개인의 죄를 책망하도록 나에게 맡겨진 일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의심과 질투를 예방하기 위하여 내가 만일 나의 행동을 완전히 설명하고, 비밀리에 간직했어야 할 것을 공개했을 것 같으면, 나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사람들에게 잘못을 범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추측대로 판단할지라도, 나는 실수한 자들과 회개한 자들이 내게 둔 신임을 결코 배반하지 않고, 오직 범죄한 자들 앞에만 제시되어야 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인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손을 떼고 나를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놓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무거운 짐이 떠난 것을 느끼면서 그 집회를 떠났다.1T 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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