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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의 대쟁투 -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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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페브르와 프랑스어 신약 성경 출판

    러페브르의 문하생들 가운데는 그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약간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러페브르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진리를 계속해서 전할 것이었다. 윌리암 파렐 (William Farel) 은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경건한 부모의 아들로서 교회의 가르침을 전심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을 받아 왔다. 그는 사도 바울과 같이 자기를 가리켜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 (행 26:5) 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열렬한 로마교도로서 교리를 반대하는 자는 모두 멸절시켜 버려야 한다는 열성으로 불타 있었다. 그는 후년에 당시의 자기의 생애에 대하여 “법왕을 반대하는 말을 들을 때에 나는 마치 사나운 이리처럼 이를 갈았다” (Wylie, b.13, ch.2) 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성도를 숭배하는 일에 매우 열렬하였으므로 러페브르와 함께 파리의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각 교회의 제단에서 예배하고, 예물을 드려 성당들을 장식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위가 그의 마음에 화평을 줄 수 없었다. 그에게 붙어다니는 죄 의식 (意識) 은 그가 실천한 고행으로 제거해 버릴 수 없었다. 그 때 개혁자의 다음과 같은 말들은 그에게 하늘에서 오는 음성처럼 들렸다.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아 얻는다.” “무죄한 분은 정죄를 받고, 죄인은 놓임을 받는다.” “하늘의 문을 열어 주고, 음부의 문을 닫아 주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Wylie, b.13, ch.2). GC 213.2

    파렐은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였다. 바울의 회개처럼 회개함으로, 그는 유전의 멍에를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유에 들어갔다. 그는 “법왕에게서 온전히 마음을 돌이켜서 그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침으로 부르짖는 이리와 같이 살기등등한 마음은 사라지고 흠 없고 유순한 어린양과 같이 되었다” (D’Aubigne, b.12, ch.3) 라고 말하였다.GC 214.1

    러페브르는 그의 제자들에게만 빛을 전하였지마는 파렐은 법왕의 사업에 열렬했던 것과 똑같은 열성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업에 열성을 다하였고, 그는 나아가 진리를 공중에게 전파하였다. 얼마 후에 교회의 한 고위 성직자인 모오 (Meaux) 의 감독이 그들과 연합하였다. 재간과 학식으로 높임을 받고 있는 교수들도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 합세하였다. 그리하여 위로는 궁전에서부터 아래로는 노동자와 농부의 가정에 이르기까지 각 계급의 사람들이 복음의 옹호자가 되었다. 당시에 왕으로 통치하고 있던 프란시스 1세의 누이까지도 개혁 신앙을 받아들였다. 또한 왕 자신도 모후 (母后) 와 함께 한 때는 거기에 호의를 보였으므로 개혁자들은 큰 희망을 가지고 프랑스가 복음화 (福音化) 될 때를 기대하였다. GC 214.2

    그러나 그들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시련과 박해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롭게도 그들의 눈에 숨기어져 있었다. 폭풍에 대응할 만한 힘을 그들에게 육성시켜 주기 위하여 평화로운 한 때가 허락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에 개혁 사업은 신속히 발전하였다. 모오의 감독은 성직자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하여 자기의 교구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다. 그 결과로 무지하고 부도덕한 승려들은 제거되고, 지식이 있고 경건한 사람들로 대치되었다. 그 감독은 사람들이 자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 일이 곧 성취되었다. 러페브르는 신약 성경의 번역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비텐베르크에서 발견되던 바로 그 때에 프랑스어 신약 성경도 모오에서 출판되었다. 그 감독은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자기의 교구 (敎區) 안에 그 성경을 보급시켰으므로 드디어 모오의 농부들까지도 성경을 가지게 되었다.GC 214.3

    마치 갈증으로 죽어 가는 나그네가 생명의 샘물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영혼들은 하늘의 기별을 받아들였다. 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작업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를 이야기함으로 날마다 즐거이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밤이면 술집에 가는 대신에 이웃끼리 한 집에 모여서 성경을 읽고 함께 기도하고 찬미를 불렀다. 곧 그들의 지역 사회에 하나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비천한 계급에 속하는 무식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농부들이었지만 그들의 생활에는 개혁과 향상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능력이 나타났다. 그들은 겸손, 성결, 사랑의 증거자로서 복음을 충심으로 받아들일 때에 그것이 어떠한 일을 이루어 주는지를 입증해 주었다. GC 215.1

    모오에서 밝혀진 빛은 멀리까지 비치었다. 회개하는 사람의 수는 매일 증가되어 갔다. 승려들의 완고한 고집을 싫어한 왕 때문에 성직자단의 분노 (忿怒) 는 한 때 견제되었다. 그러나 마침내 법왕측의 지도자들이 세력을 얻었다. 이제 화형주가 세워졌다. 모오의 감독은 화형을 받든지 신앙을 취소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강요를 받게 되었다. 그는 보다 안락한 길을 택하였다. 이와 같이 지도자가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확고하게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이 화형주의 불꽃 가운데서 진리를 증거하였다. 이러한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화형주에서까지 충성과 용기를 잃지 않으므로 평안할 때에 그들의 증거를 결코 들어보지 못했던 무수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GC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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