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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의 대쟁투 -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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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렬한 베르캥의 순교

    왕은 서로 반대되는 투사들 간에 힘과 지혜를 대조적으로 나타낼 기회를 회피하지 않고, 거만한 승려들의 자고심을 꺾어 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로마 교도들에게 대하여 성경으로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별반 유익이 없을 것을 알았다. 그들은 투옥, 고문, 화형과 같은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 형세가 역전되어 베르캥을 빠뜨리기 위하여 판 함정에 그들이 빠진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놀라서 다른 방면으로 피할 길을 찾고자 하였다. GC 217.1

    “마침 당시에 어느 길거리에 세운 성모 마리아의 상이 파손되었다.” 시중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서 슬픔과 분노의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왕의 마음도 심히 흔들렸다. 승려들은 그들에게 유리한 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하였다. 승려들은 “그것이 베르캥의 가르침의 결과이며, 그 루터당은 모든 것, 곧 종교와 법률과 왕위 자체까지 전복시키고자 하고 있다” (Wylie, b.13, ch.9) 고 부르짖었다. GC 217.2

    베르캥은 다시 체포되었다. 그러나 왕은 파리를 떠나 부재중이었으므로 승려들은 저희들 마음대로 그를 처치하게 되었다. 개혁자 베르캥은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프란시스 왕이 그를 구원해 낼 수 없도록 하고자 그 선고는 언도를 받은 그날로 집행되었다. 정오에 베르캥은 사형장으로 끌려 나갔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목격하기 위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악과 의혹으로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용감하고 고귀한 귀족 출신의 그 희생자를 주목하였다. 경악, 의분, 조소, 강한 증오심이 그 주위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얼굴을 어둡게 하였으나 오직 한 사람의 얼굴에는 아무런 그늘도 없었다. 그 순교자의 생각은 이 소동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 그는 자기의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심을 의식하였다.GC 217.3

    그를 태운 보잘것없는 작은 수레, 박해자들의 험상궂은 얼굴, 곧 그가 당해야 할 무서운 죽음, 그 모든 것들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신 그리스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곁에 계셨다. 베르캥의 용모는 하늘의 빛과 화평으로 빛나고 있었다. 베르캥의 복장은 훌륭하였다. 그는 “우단 외투와 교직 조끼를 입고 금빛 양말” (D’Aubigne.History of the reformation in the Time of Calvin, b.2, ch.16) 을 신고 있었다. 그는 이제 만왕의 왕과 온 우주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의 믿음에 대하여 증거할 것이었다. 그의 얼굴의 어떤 슬픈 흔적도 그의 기쁨을 어그러지게 하지 못했다. GC 218.1

    행렬이, 군중으로 들끓는 거리를 천천히 지나갈 때 사람들은 그의 풍채와 태도와 티끌만큼도 흐린 점이 없는 화평과 승리의 기쁨을 보고 놀랐다. “이 사람은 성전 안에 앉아서 거룩한 사물을 조용히 명상하는 사람과 같다” (Wylie, b.13, ch.9) 고 그들은 말하였다. GC 218.2

    베르캥은 화형대에서 사람들을 향하여 약간의 말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두려워한 승려들의 부르짖음과 군인들이 무기를 부딪치는 소리와 떠드는 소리로 인하여 순교자의 음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1529년에 개화된 파리에서 학문과 신학의 최고 권위자들이 “사형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최후의 말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함으로 1793년의 혁명 시대의 민중에게 가장 악한 모본을 남겼다” (Wylie, b.13, ch.9). GC 218.3

    베르캥은 교수형을 당하였고, 그의 시체는 불태워졌다. 그의 죽음의 소식은 프랑스 전국의 개혁파의 동지들을 슬프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모본은 허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들도 장차 받을 미래의 생명을 바라보면서 기쁜 마음으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D’Aubigne.History of the refo-rmation in the Time of Calvin, b.2, ch.16) 고 진리의 증인들은 말하였다.GC 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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