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에서 성화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성화의 확실한 뜻을 몰랐다. 이 축복은 내가 도달하거나 깨달을 수 없는 경지의 순결한 상태인 것만 같았다. 나는 사람들이 심한 정신적 흥분 상태에서 그들 신체의 힘이 빠지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성화의 증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도무지 깨달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나에게 “예수님을 지금 믿어라! 예수님께서 너를 지금 받아 주심을 믿어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렇게 해보려고 애썼지만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내 전신이 짜릿하게 되는 복스런 경험을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마음이 굳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황홀경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아마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마음의 성결에서 완전한 기쁨을 영원히 맛볼 수 없는 존재인 듯싶었다. LS 28.1
칭의(稱義)와 성화에 관한 나의 개념은 모호하였다. 이 두 경험이 서로 구별된 별개의 상태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차이점을 깨닫거나 그 술어들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목사님들의 설명을 들을수록 어려움만 더해 갔다. 나는 그런 축복을 나도 받아야 겠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런 축복이 감리교인들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으며, 내가 재림 전도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에 내가 무엇보다도 가장 소망하는 하나님의 성화의 영으로부터 스스로 단절시키고 있지나 않은가 의심하였다. LS 28.2
그러면서도 나는, 스스로 성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속히 오심에 관한 기별을 들었을 때 가혹한 정신을 나타내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런 태도는 그들이 소유했다고 주장하는 성결의 표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왜 목사들이 강단에서,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신다는 교리를 그렇게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교리를 전파한 결과로 개혁이 일어났고, 아주 경건한 목사들과 평신자들이 이 진리를 받아들였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이 오신다는 기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 일이 임박한 것을 기뻐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LS 29.1
나는 내가 소위 칭의라고 일컫는 것밖에 주장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성경에서,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말씀을 읽었다. 그러므로, 내가 영생을 확약받기 전에 보다 높은 어떤 경지에 도달해야만 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실 것을 믿었으며, 그분이 오실 때에 내가 그분을 맞을 준비가 덜 되어 있지 않을까 두려워서 성화 문제에 대하여 계속 연구하였다. 정죄의 선고만이 밤낮 내 귀에 울렸으며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고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었다. LS 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