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들이여, 그대들은 언젠가는 색욕이 무엇이며 그것을 방종한 결과가 어떻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결혼 관계 밖에서나 있음직한 저열한 정욕이 바로 결혼 생활 안에서도 발견된다. 사도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훈계한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5, 28, 29).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를 그의 정욕을 채우는 도구로 만들게 하는 사랑은 순결한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방종을 위하여 아우성치는 동물적 정욕이다. 1TT 268.1
사도에 의하여 특별히 지적된 방법으로 사랑을 나타내는 자가 얼마나 적은가!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 (더럽히지 아니하고)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5-27). 이것이 결혼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인정하시는 사랑의 특성이다. 사랑은 순결하고 거룩한 원칙이다. 그러나, 방탕스러운 정욕은 제어를 받지 않으며 이성에 의해 지배되거나 이성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결과를 보지 않으며,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아내들이 심한 쇠약과 지병으로 고통을 당하는데, 이는 그들의 삶의 법칙이 무시되었고 자연 법칙이 짓밟혀졌기 때문이다. 저열한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부자연스러운 행위에 뇌신경의 힘이 소모되므로, 많은 남녀들은 뇌신경의 힘을 낭비하였다. 그리고, 이 두려운 괴물, 야비하고 저급한 정욕은 사랑이라는 미명을 취한다. 1TT 268.2
내 앞을 지나간,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제어력이 결핍된 것 같았다. 그들은 신령하기보다는 동물적이다. 사실 그들은 거의 온통 동물적이다. 이러한 형태의 남편들은 그들이 보양하고 아끼겠다고 약속한 아내를 비하시킨다. 그는 저급하고 방탕한 속성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이용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매우 많은 아내들이 방탕한 정욕의 노예가 되는 일에 굴복하므로 자신의 몸을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유지하지 못한다. 아내는 결혼전에 가졌던 위엄과 자존심을 보유하지 못한다. 이 신성한 제도는 그의 여성적인 면과 거룩한 위엄을 보존하고 증가시켰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절 있고 위엄 있으며 신성한 여성다움이 저급한 정욕의 제단 위에서 사루어졌으며 남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희생되었다. 그는 곧, 짐승도 복종하는 법칙을 무시하는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린다. 결혼 생활은, 사랑이 죽어가므로 괴로운 멍에가 되며, 흔히 불신, 질투, 미움이 사랑의 자리를 대신한다. 1TT 2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