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그들의 기도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 외에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짧은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임을 인식시키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영적인 축복을 간구하며 그것에 대한 감사를 표명하는 그들의 기도의 길이와 내용을 제시하셨다. 이 모본적인 기도는 얼마나 포괄적인가! 그것은 실제적인 모든 필요를 망라하고 있다. 일반적인 대개의 기도는 일이 분으로 충분하다. 기도가 성령에 의하여 특별히 드려지며 성령 안에서 간구하게 되는 그러한 경우가 있다. 열망하는 영혼은 하나님을 따라 고민하며 신음한다. 그 영혼은 야곱이 한 것처럼 씨름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특별히 나타나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마땅한 기도이다. 1TT 277.1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메마른 태도, 설교를 하는 듯한 태도로 기도를 드린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는 기도이지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아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며 그들이 하는 것이 무엇임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치 우주의 창조주께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련된 일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특별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기도의 형식을 빌어서 주님께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기도는 소리 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이다. 그것들은 하늘에서 중요하게 여김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러한 기도를 듣도록 강요된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인하여 진력을 내게 된다. 1TT 277.2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분은 하늘 아버지께 당신의 요청을 아뢰기 위하여 한적한 수풀이나 산을 찾으셨다. 하루의 일과나 수고가 끝나고 피곤한 자들이 휴식을 찾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시간을 기도에 바치셨다. 우리는 기도를 억제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도와 경성함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성령과 깨달음으로 기도하는 일은 더욱 적다. 열렬하고 효과적인 기도는 항상 적절한 기도이며 결코 지루해지지 않는다. 그러한 기도는 헌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원기를 회복시킨다. 1TT 278.1
사람들은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는데,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하여 모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길고 지루하고 퇴보적인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한 주일동안 게을리 한 의무에 대하여 계속 언급하며, 그들의 소홀함을 보상하고 가책을 느끼는 양심을 진정시키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되풀이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호의를 받기 원하여 기도한다. 그러나, 흔히 이러한 기도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도 그들과 같이 낮은 영적인 흑암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낳는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기도와 경계에 대한 가르침을 올바로 적용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에 있어 더욱 현명해질 것이다. 1TT 278.2
우리는 십자가 주위에 모여야만 한다. 그리스도와 십자가 상에서의 그분의 죽음이 명상, 대화,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즐거움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모든 것을 우리 마음에 신선하게 간직하기 위하여, 또한 그분의 크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못 박히신 그분의 손에 우리가 기꺼이 모든 것을 의탁함을 표시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특별한 회집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 집회에서 가나안의 언어를 말하기를 배우고 시온의 노래를 부르기를 배워야 한다. 십자가의 오묘와 영광을 통하여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으며,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동료 인간들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히울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1880, vol.4, P.462. 1TT 2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