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도 비텐베르크의 생명의 샘물을 길어 온 청년들이 그 샘물을 자기 나라의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스웨덴의 종교개혁 운동의 두 큰 지도자 올라프 페트리 (Olaf Petri) 와 라우렌티우스 페트리 (Laurentius Petri) 는 오레브로 (Orebro) 의 대장장이의 아들들로서 루터와 멜란히톤의 문하에서 배우고, 그 배운 진리를 열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쳤다. 올라프도 루터처럼 열성과 웅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각성시켰고, 라우렌티우스는 멜란히톤처럼 학식이 있고, 생각이 깊고 침착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이 다 하나님을 독실히 믿을 뿐 아니라 신학에 정통하였고 진리를 전파하는 데 있어서 확고한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법왕교도들의 반대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다. 가톨릭의 신부들은 무지하고 미신적인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올라프 페트리는 자주 폭도들에게 피습되어 간신히 생명을 건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 개혁자들은 왕의 사랑과 보호를 받았다. GC 242.2
당시에 사람들은 로마교의 통치 하에 빈곤의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고, 압박으로 눌리어 지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들은 마음에 아무런 빛을 주지 못하는 상징과 의식만으로 된 종교를 믿음으로 이교도였던 그들의 선조들이 믿던 미신적 신조와 이교적 생활로 차츰 돌아가고 있었다. 국민들은 서로 분쟁하는 당파를 지어 나누어졌고, 투쟁으로 모든 국민은 더욱 불행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왕은 국가와 교회에서 개혁을 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로마교와 싸우기 위하여 그 힘 있는 조력자들을 환영하였다. GC 243.1
스웨덴의 군주 (君主) 와 지도자들 앞에서 올라프 페트리는 로마교의 지지자들을 대항하여 개혁주의의 교리를 큰 능력으로 옹호하였다. 그는 로마교의 교부들의 교훈이 성경과 일치할 때에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신앙상의 중요한 교리가 성경에 분명하고 단순하게 계시되어 있으므로 누구든지 그 교리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 7:16) 고 하셨다. 바울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누가 감히 참람되이 임의로 교리들을 제정하여 그것들이 구원에 필수적인 것들이라고 하여 강제로 지키게 할 수 있을 것인가?” (Wylie, b.10, ch.4) 라고 그 개혁자는 말하였다. 또한 그는 교회의 법령도 하나님의 명령과 위배될 때는 아무런 권위가 없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개혁주의의 대원칙, “성경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임을 역설하였다. GC 2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