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백년 후, 곧 영적 암흑시대에 휫필드 (Whitefield) 와 웨슬리 (Wesley) 형제는 하나님의 빛을 전하는 사람들로 나타났다. 당시의 영국 사람들은 국교회 (國敎會) 의 통제 아래 이교도와 거의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적으로 쇠퇴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성직자는 자연 종교를 즐겨 연구하였으므로 그들의 대부분의 신학은 그런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상류 계급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냉소하였고, 소위 그들이 광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위에 있다고 자랑하였다. 하류 계급은 심한 무지 상태에서 부도덕에 빠져 있었다. 그와 반면에 교회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진리의 사업을 지탱할 힘이나 믿음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GC 253.1
루터가 그렇게도 분명히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는 이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교의 교리가 그 대신 자리를 차지하였다. 국교회의 교인이었던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경건한 생활과 종교적 의식을 모두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GC 253.2
한 번은 찰스 웨슬리 (Charles Wesley) 가 병이 들어 죽음이 다가오는 것처럼 생각되었을 때, 그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무엇에다 두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나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고 대답하였다. 그 질문을 한 친구가 그 대답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나의 노력이 소망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못 된다는 말인가? 나의 노력을 하나님께서 절취하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달리 신뢰할 만한 것이 없다” (John Whitehead, Life of the Rev.John Wesley, p.102). 그와 같이 짙은 암흑이 교회를 덮고 있었으므로, 속죄를 가려 버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빼앗고, 사람들의 마음을 구원의 유일한 희망, 곧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의 피에서 떠나가게 하였다. GC 253.3
웨슬리와 그의 동료들은 참된 종교는 마음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율법은 말과 행동에는 물론이요, 생각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외부에 나타나는 행위의 바름뿐 아니라 마음의 성결이 또한 필요한 것을 확신하였으므로 새 생애에 들어가기를 힘썼다. 그들은 가장 근면하고 경건한 노력으로 그들의 육신적 마음의 사악함을 극복하고자 애를 썼다. 그들은 극기와 박애와 겸비의 생애를 살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게 해주는 성결, 곧 그들의 가장 열망하는 것을 얻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방법을 매우 엄밀하고 정확하게 준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였다. 정죄의 상태에서 놓여나고 죄의 세력을 깨뜨리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은 허지로 돌아갔다. 그것은 바로 루터가 에르푸르트의 외로운 방에서 경험한 것과 똑같은 투쟁이었다. 그것은 그의 심령을 괴롭게 했던 문제, 곧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욥 9:2) 고 한 바로 그 문제였다. GC 254.1
개신교의 제단에서 거의 꺼져간 거룩한 진리의 불꽃은 보헤미아의 그리스도인들로 말미암아 여러 세대 동안 전하여 내려온 고대의 횃불로부터 다시 밝혀져야 했다. 종교개혁 후에 보헤미아의 개신교는 로마의 세력에 여지없이 짓밟혔다. 그리하여 진리를 포기하기를 거절한 모든 사람들은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의 더러는 작센에서 피난처를 찾았고, 거기서 옛날의 신앙을 보전하였다. 웨슬리와 그의 동료들이 진리의 빛을 받은 것은 바로 이 그리스도인들의 후손으로부터였다. GC 2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