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선교 사업을 위하여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그들은 모라비아 교도들과 일행이 되어 배를 타게 되었다. 그들은 항해 중에 심한 폭풍우를 만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웨슬리는 그 때에 아직 자기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의 보증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자기가 맛보지 못한 신뢰와 평안을 그 독일인들은 나타냈다. GC 254.3
그는 말하였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들의 진실한 태도를 관찰하였다. 그들은 다른 여객들을 위하여 영국 사람은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아니할 비천한 일들을 함으로 항상 겸손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일에 대하여 아무런 보수도 원치 아니하였고, 그것은 자기들의 교만한 마음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라고 하며 그들의 사랑하는 구주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더욱 큰 일을 행하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어떠한 장애를 만날지라도 거기에 동요되지 않는 유순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만일 밀침을 당하든지, 매를 맞든지, 넘어뜨림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다시 일어나서 가 버릴 뿐이요, 한 마디의 불평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교만과 분노와 복수의 정신에서는 물론이요 공포심에서 놓여났는지의 여부를 시험해 볼 기회가 왔다. 그들이 언제든지 예배를 시작할 때에 시편을 송영하던 그대로 시편을 읽고 있을 때 바다가 거칠어지고, 큰 돛이 찢어지고, 파도는 배를 삼키려는 듯이 간판 위를 휩쓸었다. 이때에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떠들고 부르짖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 독일인들은 조용히 송영을 계속하고 있었다. 후에 나는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당신들은 무섭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또 ‘그러나 부인들과 아이들은 무서워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아니요, 우리의 부녀들과 아이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였다” (John Whit-ehead, Life of the Rev.John Wesley, p.10). GC 255.1
사반나 (Savannah) 에 도착한 후, 웨슬리는 얼마 동안 그 모라비아 교도들과 함께 지냈는데, 그들의 그리스도인적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생명이 없는 형식적인 영국 교회와는 현저하게 다른 그들의 예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매우 단순하면서 엄숙한 그 예배는 모두 나로 하여금 1700년의 시간적 거리를 잊어버리게 하고 형식과 의식은 없을지라도 천막 제조자 바울과 어부 베드로가 지도하였지마는 성령과 능력이 나타났던 당시의 어떤 회집에 참석한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John Whitehead, Life of the Rev.John Wesley, pp.11, 12). GC 2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