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러는 당시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열광적인 환희는 없었다. 그런 일은 미래에 속한 것으로 하늘과 땅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충만하여질 그 때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 또한 즐거운 환호성 (歡呼聲) 도 없었다. 그것 역시 하늘에서 환호성을 올릴 때를 위하여 남겨 두었기 때문이었다. 노래하는 사람들도 잠잠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찬양대, 곧 천사들의 무리와 연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견의 충돌이 없었고,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뭉쳐있었다” (S.Bliss, Me-moirs of Wm.Miller., pp.270, 271). GC 401.1
그 운동에 참가했던 또 다른 사람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그 운동은 각 곳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깊이 살피는 일과 심령을 겸비하게 하는 일을 일으켰다. 그 운동은 세속적 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하였고, 다툼과 원한을 화해하고, 모든 잘못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용서와 가납하심을 얻기 위하여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탄원하게 하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겸비와 완전한 순종을 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요엘을 통하여 여호와의 큰 날이 절박해 오는 때를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었으며, 금식하고 통회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스가랴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마음을 부어 주셨다. 그들은 그들이 찌른 주님을 우러러보았으므로 온 땅에는 크게 통곡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였다”[Bliss in Advent Shield and Review, vol 1, p.271 (Jan., 1845) ]. GC 401.2
사도 시대 이래로 모든 위대한 종교운동들 중에서 1844년 가을의 재림운동만큼 인간적 결함과 사단의 간계에서 벗어난 운동은 없었다. 그 후 여러 해를 지낸 오늘날에 있어서까지도 그 당시의 운동에 참가하여 진리의 토대 위에 굳게 섰던 사람들은 누구나 당시의 그 복된 사업에 나타났던 거룩한 감화력을 깨닫고,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운동이었음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GC 401.3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부르짖음을 듣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하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열렬한 흥미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였다. 천사들은 실망한 사람들을 일으켜서 그 기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하고자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그 사업은 사람의 지혜나 학식으로 지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다. 이 부르심을 처음으로 듣고 순종한 사람들은 가장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겸비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다. 농부들은 추수할 곡식들을 밭에 세워둔 채, 직공들은 그들의 도구를 버려둔 채, 눈물과 기쁨으로 그 경고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런데 전에는 무슨 일에나 앞장을 서던 사람들이 이 운동에는 맨 뒤에 서 있었다.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그 기별에 대하여 문을 닫았으므로 그 기별을 받아들인 많은 무리들은 그들의 교파에서 나왔다. 하나님의 섭리로 그 기별의 선포가 둘째 천사의 기별과 연합되어 그 사업에 큰 힘을 더하게 되었다. GC 402.1
“보라 신랑이로다”는 기별은 성경적인 증거가 분명하고 결정적이었지만 그것은 논증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기별에는 심령을 움직이는 압도적인 능력이 함께 하였다. 거기에는 아무 의심도, 질문도 없었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실 때 유월절을 지키러 각 곳에서 온 사람들이 감람산으로 모였다. 거기서 그들은 예수님을 수행하고 있는 군중들과 합세하였는데, 그들은 그 분위기의 영감에 사로잡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복이 있을지어다” (마 21:9) 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재림신자들의 집회에 참석했던 불신자들이 더러는 호기심에서, 더러는 조롱하기 위하여 모였지마는 그들 역시 “보라 신랑이로다”는 그 기별이 가진 감동적인 능력을 느꼈다. GC 4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