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의 분열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세 사람의 법왕이 제각기 최상권을 장악코자 다투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교국은 범죄와 소동으로 충만하여졌다. 그들은 피차에 저주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속적 무력에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각각 무기를 구입하고 군대를 모집하기 위하여 애썼다. 물론 돈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소위 교회에 속한 은사, 지위, 축복 등이 돈으로 매매되었다. 신부들도 역시 그들의 위에 있는 성직자들의 본을 받아 성직을 매매하고 자기의 상대자를 넘어뜨리고 자기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싸웠다. 이러한 철면피한 행동들이 날마다 증가되어감으로 후스는 소위 종교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가증한 행위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또한 백성들도 로마교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교국을 비참하게 만드는 자들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그리고 프라하에는 바야흐로 유혈의 참극이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옛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 (왕상 18:17) 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도시는 두 번째로 파문을 선고받았고, 후스는 시골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사랑하는 베들레헴 회당에서 행하던 그의 충성된 증언은 그쳤다. 이제 그는 진리의 증인으로서 그의 생명을 바치기 전에 더욱 넓은 무대에서 온 그리스도교국을 향하여 말할 것이었다. GC 103.2
온 유럽을 혼란에 빠지게 한 화근을 제거하기 위하여 콘스탄스에서 총회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는 시기스문트 (sigismund) 황제의 희망에 따라 세 경쟁자 중의 하나인 요한 23세가 소집한 것이었다. 법왕 요한은 원래 회의를 소집하는 것을 환영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인격과 정책에 있어서 당시의 교인들에게서뿐 아니라 타락한 주교들로부터도 힐책과 비난을 받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히 시기스문트의 뜻을 반대할 수가 없었다 (부록 16 참조). GC 104.1
회의에서 달성되어야 할 주요한 목표는 교회의 내분을 화해시키고, 이단을 뿌리 뽑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참칭 (僭稱) 법왕과 새로운 주장을 퍼뜨리는 주동자로 지목된 얀 후스가 그 회의에 소환되었다. 그 참칭 법왕들은 모두 자기들의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 직접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그들의 대표자들을 참석시켰다. 법왕 요한은 표면상으로 그 회의의 소집자였지만, 황제가 자기를 폐하려는 은밀한 목적이나 없는지, 또는 자기가 삼층관을 얻기 위하여 자행한 범죄와 그 삼층관을 욕되게 한 행위에 대하여 문책당하지나 않을지 하는 여러 가지 불안과 의구심 (疑懼心) 을 가지고 회의에 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교회의 높은 직분을 가진 사람들과 많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콘스탄스 성으로 들어갔다. 시 (市) 의 고관들과 성직자들은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그를 환영하였다. 그의 머리 위에는 황금으로 만든 천개 (天蓋) 가 덮이었고, 그것을 그 지방 장관 네 사람이 붙들고 있었다. 성체 (聖體) 는 그의 앞에서 운반되어 가고, 추기경들의 화려한 복장들은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하였다. GC 104.2
그 때에 또 다른 여행자가 콘스탄스 성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후스는 자기를 위협하고 있는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그 길을 마치 영원한 이별의 길인 것처럼 느끼고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그는 차츰 화형주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여행을 계속하였다. 그는 보헤미아의 왕으로부터 그의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는 통행권을 받았고, 또한 시기스문트 황제가 보증해주는 여행 도중의 안전을 위한 통행권까지도 받았지만 도저히 사망을 피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고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갔다. GC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