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스는 마지막으로 큰 회의에 소환되었다. 그것은 실로 규모가 크고도 엄숙한 집회였다. 황제와 왕공과 사신과 추기경들과 감독과 신부들이 열석하고, 밖에는 허다한 방청자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양심의 자유를 얻기 위한 긴 투쟁에서 최초의 큰 희생자를 목격하고자 그리스도교국의 각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GC 108.2
후스는 최후의 결심을 표명하도록 요구받았을 때, 자기의 견해를 철회하기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는 약속한 바를 아무런 가책 없이 깨뜨려버린 황제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나는 여기 임석한 황제의 신의 (信義) 와 공공연한 보호 아래 내 자신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대회의에 출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Bonnechose, vol.2, p.84) 라고 언명하였다. 그러자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황제에게 집중되었으며, 시기스문트는 얼굴을 붉혔다. GC 108.3
선고가 언도되고, 지위를 박탈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감독들은 그 죄수에게 승려와 같은 옷을 입혔다. 후스는 승복을 손에 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치욕을 받으실 때에 흰옷을 입으시고 헤롯에게서 빌라도에게로 호송되셨다” (Bon-nechose, vol.2, p.86) 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취소하라는 권고를 다시 받게 되자 그는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까지 순결한 복음을 전한 저 사람들을 무슨 면목으로 쳐다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의 구원을 이제 죽기로 작정된 불쌍한 나의 몸 이상으로 귀중하게 여긴다.” 그의 제복 (祭服) 은 하나씩 차례로 벗겨졌는데, 그럴 때마다 의식을 행하고, 열석한 감독들은 차례대로 저주를 선언하였다. 드디어 그의 머리 위에는 모자 곧 피라미드 모양으로 만든 종이 고깔이 씌워졌는데, 거기에는 악마의 무서운 형상이 그려져 있고 대이단자라는 글자가 그 앞면에 뚜렷하게 쓰여 있었다. 후스는 ‘주 예수여 이 종은 더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당신을 위하여 치욕의 관을 쓰나이다. 나를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주 예수여!’ 하고 부르짖었다. GC 108.4
이런 의식을 행한 후에 “주교는 ‘네 영혼을 마귀에게 주노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 얀 후스는 하늘을 우러러, ‘오, 주 예수여! 당신이 나를 구원하셨으니, 나는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고 말하였다” (Wylie, b.3, ch.7). GC 109.1
그 후에 그는 세속적 권세에 맡겨져 처형장으로 끌려나갔다. 그의 뒤에는 많은 군중, 몇백 명의 무장한 사람들, 아름다운 의복을 입은 신부와 주교들, 콘스탄스 성의 주민들이 따랐다. 그가 화형주에 결박되고 불을 붙일 수 있는 준비가 다 갖추어졌을 때에 그 순교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그의 오류를 취소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무슨 오류를 취소하라고 하는가? 나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저술한 것과 전파한 것은 모두 사람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증거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저술하고 전파한 진리를 나의 피로써 확인하기를 매우 기뻐한다” (Wylie, b.3, ch.7). 이윽고 불을 붙이매 그는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찬미를 그의 목소리가 영영히 그쳐질 때까지 불렀다. GC 109.2
심지어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열광적인 법왕당의 한 사람은 후스와 그 후에 있은 제롬의 순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두 사람은 다같이 최후의 순간까지 변함없이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화형을 받기 위하여 나아가기를 마치 혼인 잔치에 나아가는 것과 같이 하였다. 그들은 아무런 고통의 부르짖음도 발하지 않았다. 불길이 일어날 때에 그들은 찬미를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그 불길의 기세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그치게 할 수 없는 듯하였다” (Wylie, b.3, ch.7). GC 109.3
후스의 몸이 다 타버린 다음에 그들은 그 재와 흙을 모아서 라인 강에 던져 대해로 흘러가게 하였다. 그의 핍박자들은 그가 전한 진리를 근절한 것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날에 던져진 재가 대해로 흘러가서 각 나라에 씨를 뿌리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까지 진리를 증거하는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질 것을 그들은 거의 생각지 못하였다. 콘스탄스의 회의장에서 부르짖은 그의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그 후 각 시대를 통하여 쉼없이 울려 퍼질 것이었다. 후스는 이미 가고 없으나 그가 생명을 바쳐서까지 옹호한 그 진리는 결코 멸절될 수 없었다. 그의 신앙과 충성의 모본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문과 사망을 당하면서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의 처형 (處刑) 은 횡포한 로마의 잔인성을 전 세계에 드러내 보이는 일이 되었다. 진리의 원수들은 자기들이 없애 버리려고 한 그 사업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히려 발전시키는 결과를 빚어내게 되었다. GC 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