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분명한 날짜를 선포하게 되자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들로부터 가장 무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들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의 많은 사람들의 큰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벧후 3:3, 4) 고 한 예언의 말씀이 여기에서 성취되었다. 구주를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재림의 교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일정한 날을 정하는 일을 반대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그들의 마음을 다 아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의로써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듣고 싶어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불충실한 종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가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심사에 통과될 수 없을 것을 알므로 주님을 만나기를 두려워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초림 시의 유대인들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명백한 증언들을 듣지 아니할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조소하였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기뻐 날뛰면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소위 그리스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분의 나타나심을 원하지도 아니한다고 조롱하였다. GC 370.1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은 재림신앙을 거절하는 자들이 가장 흔히 제기한 논증이었다. 그 성경절은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성경절을 명백하고 조리 있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이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반대자들임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마지막으로 작별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서 잊을 수 없는 담화를 나누실 때에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마 24:3) 라고 물었다. 그 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의 징조를 말씀하시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 24:33) 고 하셨다. 구주께서 하신 한 가지 말씀이 다른 말씀을 없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비록 그분께서 오시는 날과 시를 아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날과 시가 가까이 이른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요구를 받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그분의 경고를 멸시하고 그분의 재림이 가까움을 알기를 거절하거나 게을리하게 되면 홍수가 다가오는 것에 무관심했던 노아 당시의 사람들처럼 그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또한 그같은 장 (章) 에 충성된 종과 충성되지 않은 종을 대조하여 말씀하시고, 심중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한 종에게 파멸의 선고를 내린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오심을 대망하고 깨어 있는 자와 그 일을 거부하는 자를 구별하여 각각 어떻게 갚아 주실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2, 46)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 3:3) 고 말씀하신다. GC 3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