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당신의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일 외에, 또한 그분의 재림, 곧 심판을 행하기 위하여 오시는 일을 말라기는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말 3:5). 유다도 같은 사건에 대하여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는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유 14, 15) 고 말한다. 이러한 임하심과 주님께서 당신의 성전에 임하시는 일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다. GC 425.3
다니엘서 8장 1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것과 다니엘서 7장 13절에 묘사된 대로 인자 같은 이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앞에 나아가시는 것과 말라기가 예언한 것처럼 주님께서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는 것 등의 세 가지는 모두 같은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직접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신랑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 GC 426.1
1844년 여름과 가을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기별이 선포되었다. 그 때에 슬기 있는 처녀와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곧 한 부류의 사람들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바라보고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부지런히 준비하는 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일시적 충동으로 행동하여 진리의 이론에만 만족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결핍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비유에 의하면, 신랑이 올 때에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신랑이 오는 것은 잔치보다 먼저 있는 일임을 알려 준다. 그리고 혼인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나라를 받으시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한 성, 곧 그 나라의 수도요 대표인 새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라고 불리워진다. 천사는 요한에게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계 21:9) 고 말하였다. 선지자는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 21:10)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부란 거룩한 성을 대표하며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처녀들은 분명히 교회를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손님들로 불리고 있다 (계 19:9 참조). 손님이 된 자가 동시에 신부로 대표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이 기록한 대로 하늘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께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으실 것인데,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 (단 7:14; 계 21:2) 은 당신의 나라의 수도, 새 예루살렘을 받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 나라를 받으신 후에 그 나라에서 당신의 상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앉” (마 8:11; 눅 22:30) 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 GC 4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