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각 교파에서 경건한 신자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개탄하고 있다. 에드워드 에이 파크 교수는 종교계가 당면한 위기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위험의 한 가지 원인은 강단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강조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강단이 양심의 소리가 메아리치는 곳이었다. …우리의 가장 유명한 설교자들은 주님의 본을 따라 강단에서 율법과 그 교훈과 그 엄숙한 명령을 명백히 가르쳐 줌으로써 언제나 놀랄 만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항상 두 가지 큰 원리를 반복하여 말하였으니 곧 율법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나타내는 사본이며 율법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복음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두 가지의 큰 원리를 반복하였다. 왜냐하면 율법은 복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참 품성을 반사하는 하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 율법을 사랑하지 않는 위험은 죄의 흉악성, 죄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 죄의 결점들을 과소평가하는 위험을 가져온다. 율법을 거역함으로 조성되는 악은 그 율법이 지닌 의에 비례된다. … GC 465.2
이미 언급한 위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과소평가하는 위험이다. 오늘날 강단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경향은 하나님의 공의를 하나님의 자비와 분리시키고 그 자비를 원칙으로 높이지 않고 하나의 감정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신신학 (新神學) 은 하나님께서 결합시켜 놓은 것을 산산조각으로 해체시켜 버렸다. 하나님의 율법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물론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의도 선한 것이다. 왜냐하면 공의는 율법을 집행하게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공의, 인간의 불순종과 죄의 범위를 과소평가하는 습관 때문에 사람들은 죄를 속하기 위하여 마련된 은혜도 과소평가하는 습관을 이루기 쉽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서 복음의 가치와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미구에 성경 자체까지도 내어버리게 된다. GC 4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