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악인들이 영원히 불타고 있는 지옥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사람이 짧은 일생에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내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교리는 사랑과 자비의 감정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심지어 공의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견해에 비추어 볼 때에도 얼마나 모순되는가. 그러나 이 교리는 널리 유포되어 있고 그것이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교의 신경 (信經) 이 되고 있다. 어떤 유명한 신학 박사는 말했다.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광경은 성도들의 행복을 영원히 증진시켜 줄 것이다. 같은 성정을 가지고 같은 환경에서 태어난 다른 사람들이 그처럼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과 그들과 전혀 구별되어 있는 자신을 볼 때 그들의 행복감은 한층 더 커질 것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진노를 받는 자들 위에 영원한 형벌이 집행되고 그 고난의 연기가 자비를 받은 자들의 눈앞에서 피어오를 때 비참한 자들의 운명을 면한 그들은 아멘 할렐루야! 주님을 찬송할지어다고 부르짖을 것이다.” GC 535.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어느 페이지에서 이런 말을 찾을 수 있는가? 구속을 받아 하늘에 있는 자들이 자비와 동정의 감정, 그리고 보통 사람들에게 있는 정서마저도 모두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스토아 철학자들처럼 냉정해지고 야만인처럼 잔인하게 되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의 책이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이미 인용한 것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학식 있고 또한 정직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단의 궤변에 속임을 당하고 있다. 사단은 그들에게 성경의 강한 표현들을 곡해하게 하고 창조주께 속하지 않고 자기에게 속한 악의와 원한의 뜻을 성경 구절에 붙인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겔 33:11). GC 535.2
하나님께서 끊임없는 고통을 목격하고 기뻐하시고 그분께서 지옥의 불속에 던진 자들의 고통과 괴로움과 저주의 소리를 듣기를 즐거워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고 해도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될 것인가? 그 처참한 부르짖음이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의 귀에 음악으로 들릴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악인들에게 과해지는 끝없는 고통이 하나님께서 우주의 질서와 평화를 파괴한 악으로서의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모독인가! 마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가 그 고통을 영원히 지속시키시는 이유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 신학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 불쌍한 희생자들은 자비의 희망 없이 끊임없는 고통으로 미친 것처럼 되어 저주와 참람된 말로 분노를 쏟아 놓으므로 그들의 죄의 무게를 영원히 더하고 있다.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죄가 계속하여 증가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높여지는 것은 아니다. GC 536.1
영원 지옥설로 말미암아 초래되어온 악은 사람의 마음으로 능히 헤아릴 수 없다.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고 동정이 넘치는 성경의 가르침이 미신으로 어두워지고 공포로 가리워졌다. 사단이 하나님의 품성에 물들여 놓은 거짓된 색깔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우리의 자비로운 창조주를 두려워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심지어 증오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인가? 강단에서의 가르침을 통하여 온 세계에 퍼져 있는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무서운 견해는 수천, 아니 수백만의 회의론자와 무신론자들을 만들어 내었다. GC 5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