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외형상으로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과 의식은 죄에 빠진 영혼들의 갈망을 우롱 (愚弄) 하는데 불과하고 그 내부의 부패를 증거한다. 그리스도교는 그러한 것에 매력을 갖게 할 필요가 없다. 십자가에서 비쳐오는 빛 가운데서 참된 그리스도교는 순결하고 아름답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 참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외관상 장식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은 성결의 미와 겸손하고 안정된 정신이다. GC 566.3
외관상 아름다움이 반드시 순결하고 고상한 사상의 지표는 아니다. 고상한 예술 지각과 우아하고 세련된 취미가 세속적이며 육욕적인 사람의 심중에도 흔히 있다. 그들은 흔히 사단에게 이용되어 사람들에게 심령의 필요를 잊어버리게 하고 미래의 생애와 영생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무한한 구원자에게서 돌아서서 이 세상만을 위하여 살도록 만든다. GC 567.1
외관을 치장하는 종교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에 매력적이다. 천주교 예배의 화려한 모습과 의식에는 매혹적이며 황홀케 하는 일종의 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거기에 기만당하여 로마교를 바로 하늘 가는 문인 것처럼 쳐다보게 된다. 오직 진리의 기초 위에 굳게 서 있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성령으로 마음이 새로워진 사람들만이 로마교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스도께 대한 체험적 지식을 갖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경건의 모양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 종교가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는 종교이다. GC 567.2
교회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주장은 로마교도들에게 마음대로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그리고 죄를 고백하는 의식 (儀式), 곧 그것이 없으면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그 의식 또한 죄를 범하도록 허용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 타락한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심중의 은밀한 사상과 생각을 고백하는 자는 자신의 인간성을 저하시키고 심령 속에 있는 온갖 고상한 능력을 저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사제 (司祭), 실수와 죄가 많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너무도 흔히 음주와 방종으로 타락한 인간에게 자기 생애에 있는 죄를 고백함으로 그의 품성의 표준은 저하되고 그로 말미암아 더럽혀진다. 그는 하나님을 타락한 인간과 같은 분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제가 하나님의 대표자의 위치에 서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그 비열한 고백은 이 세상을 더럽혀서 마지막 멸망을 받게 하는 많은 죄악을 흘려 내보내는 보이지 않는 원천이다. 그러나 방종을 좋아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 마음을 펴놓는 것보다 자기와 동일한 인간에게 고백하는 일이 더욱 좋게 여겨진다. 또한 인간성에서 볼 때 고행을 하는 것이 죄를 버리는 것보다 마음에 드는 일이며 육체를 베옷과 쐐기풀로 괴롭게 하고 쇠사슬로 제어하는 편이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보다 더욱 쉽다. 육신의 마음으로는, 무거운 멍에를 메는 것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는 것보다 더욱 낫다. GC 5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