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 장소가 아우크스부르크 (Augsburg) 로 지정되었으므로 루터는 도보로 그 곳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두려운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중에서 그를 체포하여 살해하리라는 풍문까지 돌았으므로 그의 친구들은 이와 같은 위험한 모험을 하지 못하도록 그에게 간청하였다. 그들은 그로 하여금 잠시 동안 비텐베르크를 떠나서 그를 기꺼이 영접하여 보호해 줄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피하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그 자리에서 떠나가고자 하지 않았다. 어떠한 폭풍이 그에게 불어올지라도 그는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충성해야 했다. 그는 말하였다. “나는 예레미야 같이 투쟁과 싸움의 사람이다. 그들의 협박이 더하면 더할수록 나의 기쁨도 증가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나의 명예와 명망을 꺾어 버렸다. 한 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가련한 나의 육체뿐이다. 이것마저 빼앗아 간다 해도 두렵지 않다. 그들은 내 생명을 불과 몇 시간으로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만은 그들이 빼앗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세상에 전파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이든지 죽음을 각오하여야 한다” (D’Aubigne, b.4, ch.4). GC 134.3
루터가 아우크스부르크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은 법왕의 사절을 매우 기쁘게 하였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패역무도한 이단자가 이제 로마의 권세 아래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법왕의 사절은 그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개혁자는 통행권을 가지지 않고 왔다. 그의 친구들은 그것이 없이 법왕의 사절 앞에 나타나지 말도록 간청하는 한편 그들 자신이 황제로부터 그것을 얻고자 교섭하였다. 법왕의 사절은 루터로 하여금 자신의 주장을 취소하게 하든지, 그것이 안 되면 그를 로마로 보내어 후스와 제롬이 당한 것과 똑같은 운명에 빠뜨리고자 계획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부하들을 시켜서 루터로 하여금 자기의 자비를 믿고 통행권 없이 출두하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개혁자는 그렇게 하는 일을 단연코 거절하였다. 그는 황제가 보호를 약속하는 문서를 주기까지 법왕의 사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GC 135.1
법왕 측에서는 루터를 설복시키기 위한 하나의 술책으로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고자 작정하였다. 법왕의 사절은 그와 회견하면서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는 루터에게 무조건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고 어떤 점에서든지 이론과 의문을 제기하지 말고 굴복하기를 요구하였다. 그는 자기가 취급하고 있는 사람의 성격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였다. 이에 대하여 루터는 교회에 대한 자기의 관심과 진리에 대한 욕망과 자기의 가르침에 대하여 제기하는 온갖 반대에 즐거이 답변할 마음과 어떤 특별한 대학에서 자기의 교리를 검토하겠다면 쾌히 응할 의사가 있다는 것 등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류에 대한 판명이 나기도 전에 신앙의 취소만을 요구하는 법왕의 사절의 태도에는 반대하였다. GC 135.2
법왕 측의 반응은 오로지 “취소하라, 취소하라”는 말뿐이었다. 루터는 자기의 주장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므로 진리를 부인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언명하였다. 루터의 이론에 대답할 수 없게 된 법왕의 사절은 비난과 욕설과 책망을 쏟아 놓음으로 위압하고, 교부 (敎父) 들의 말과 전설을 여기저기서 인용하여 늘어놓음으로써 루터에게 더 이상 말할 기회를 주지 아니하였다. 그런 상태로 회의를 계속하면 결국 헛수고만 하게 될 것을 안 루터는 드디어 그의 답변을 문서로써 제출하라는, 마지못한 허락을 받아냈다. GC 1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