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는 그리스도교의 개혁을 위하여 독일의 황제와 귀족들에게 보내는 호소의 편지에서 법왕에 관하여 기록하였다. “스스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어떠한 황제도 미치지 못할 만큼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과연 그것이 가난한 예수님과 비천한 베드로의 생활과 유사하겠습니까? 그를 가리켜 세계의 주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법왕이 그분의 대리자 됨을 자랑하는 그리스도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대리자의 영토가 자기 주인의 것보다 더 커서야 되겠습니까?” (D’Aubigne, b.6, ch.3). GC 140.4
또 그는 각 대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각 대학이 만일 열렬히 성경을 설명하고, 그것을 청년들의 마음 가운데 인상시켜 주지 못한다면, 지옥의 문이 될까 두려워하는 바이다. 나는 누구든지 성경을 으뜸으로 삼지 않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말도록 권면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없는 교육 기관은 모두 틀림없이 타락하고야 만다” (D’Aubigne, b.6, ch.3). GC 140.5
이 호소는 독일 전국에 신속히 전달되어 각 사람들에게 강력한 감화를 끼쳤다. 온 나라는 분발하고, 군중들은 궐기하여 개혁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루터를 반대하는 자들은 보복할 생각이 불 일듯 일어나서, 그에게 대하여 단호한 태도를 취해 주기를 법왕에게 간청하였다. 그의 교리들은 즉시 정죄의 선고를 받아야 한다고 공고되었다. 그 개혁자와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60 일간의 유예 기간이 허락되었으며, 그 기간 안에 신앙을 취소하지 않으면 모두 파문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GC 141.1
그것은 종교개혁에 있어서 무서운 위기였다. 지나간 수세기 동안 로마의 파문은 강력한 황제들에게 공포감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막강한 제국 (帝國) 에 불행과 황폐를 가져다주었다. 일단 파문의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일반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의 동료들과의 교제도 끊어지고,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수색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루터는 자기에게 엄습해 오고 있는 폭풍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굳게 서서 자기를 지탱해 주고 방패의 역할을 해주실 그리스도를 신뢰하였다. 순교자의 믿음과 용기로써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제 어떠한 일이 일어날는지 나는 알지 못하며 구태여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강풍이 몰아치려면 쳐보라.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의 나뭇잎도 우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그분의 종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을 것인가? 육신으로 나타나셨던 말씀도 돌아가셨거든 그 말씀을 위하여 죽는 것은 별로 중대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감으로 우리는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D’Aubigne, (3rd London ed., Walth-er, 1840) b.6, ch.9]. GC 141.2
마침내 법왕의 교서가 루터에게 전달되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것을 불경하고 거짓된 것으로 멸시하고 배격한다. …그것으로 정죄받으신 분은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 사업을 위하여 이와 같이 고생당하는 것을 나는 기뻐한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더욱 큰 자유를 느끼고 있다. 나는 법왕이 적그리스도이며, 그의 보좌는 곧 사단의 위 (位) 인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D’Aubigne, b.6, ch.9). GC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