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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교훈 -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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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장 용서의 한도

    베드로가 그리스도께 와서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다. 랍비들은 용서하여 주는 일을 세 번까지로 제한했다.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른다고 생각했던 베드로는 용서의 한계를 완전수인 일곱 번까지로 확대시켰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용서하는 일에 결코 싫증을 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그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COL 243.1

    다음에 그분은 용서해야 할 참된 이유와 용서하지 않는 정신을 품을 때의 위험을 보여 주셨다. 그는 비유로써 한 왕이 자기 나라의 국사를 맡아보는 신하를 처리한 사건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이 신하들 중 더러는 많은 국고금을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맡긴 돈의 관리 상황을 조사했을 때 한 사람이 일만 달란트라는 거액의 빚을 진 것이 드러났다. 그는 왕의 앞에 끌려 나왔다. 그는 빚을 갚을 돈이 없었으므로 왕은 그 당시 풍습을 따라 그와 그가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서 빚을 갚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이 명령을 듣고 떨면서 왕의 발 앞에 엎드려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고 탄원하였다.COL 243.2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COL 244.1

    이 비유는 사건을 충분히 묘사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으나 영적으로는 그 비유의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고려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 세세한 부분에 정신을 팔지 말아야 한다. 이 비유에는 커다란 진리가 설명되어 있는 데 우리는 그것에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켜야 한다. COL 244.2

    이 왕이 베푼 용서는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나타낸다. 종을 불쌍히 여기고 빚을 탕감해 준 왕은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사람은 율법을 범함으로 인하여 죄의 선고 아래 있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가리우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시고 각 사람에게 피로 사신 용서를 값없이 제공해 주신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시 130:7).COL 244.3

    다음의 말씀에서 우리가 마땅히 우리와 같은 죄인들에게 인자를 베풀어야 할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COL 245.1

    비유 가운데 빚진 자가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라는 약속을 하면서 연기해 주기를 간청했을 때에 그에게 내린 선고는 취소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빚이 완전히 탕감되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그에게 자기를 용서해 준 주인의 모본을 따를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빚을 탕감 받고 나가다가 자기에게 적은 액수의 빚을 진 동관을 만났다. 그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을 받은 반면에 그의 동관은 그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처럼 자비로운 대우를 받은 그는 자기 동관을 전연 딴판으로 대접하였다. 그에게 빚진 동관은 그가 왕에게 탄원했던 것처럼 그에게 탄원했으나 그 결과는 전과 같지 않았다. 바로 조금 전에 용서함을 받은 그 사람은 부드러운 마음이나 동정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베풀어 준 자비를 그의 동관을 취급하는 일에 나타내지 아니했다. 그는 조금만 더 참아 달라는 동관의 호소에 유의하지 않았다. 이 은혜를 저버린 종은 마음속에 오직 자기에게 빚진 적은 금액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에게 빚진 돈 전부를 갚도록 요구하는 동시에 자기에게서 내렸다가 은혜스럽게 취소된 선고와 유사한 선고를 그에게 그대로 집행해 버렸다. COL 245.2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가! 그 빚진 자가 임금에게 자비로운 처분을 호소했을 때에 그는 자기의 빚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속절없는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힘으로 그 빚을 갚으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자기 자신의 어떤 행위로 얻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COL 245.3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무능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 받지 않고 자신들의 의로움을 내세우려 한다. 죄로 인해 그들의 마음을 찢고 겸비하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각박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 저희가 하나님께 지은 죄를 저희 형제가 그들에게 지은 죄와 비교한다면 일만 달란트 대 백 데나리온, 즉 거의 백만 대 일이나 되는데도 저희는 용서하는 마음이 없다.COL 246.1

    비유 가운데서 주인은 그 빚졌던 무자비한 종을 불러다가 말하기를,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에게 붙이니라.” 예수께서는 그와 같이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다. 용서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 결국 자기의 용서의 희망을 내던지는 것이다. COL 247.1

    그러나 이 비유의 교훈을 잘못 적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그분께 순종해야 할 우리의 의무를 경감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한 용서의 정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에 대한 요구를 경감시키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가르치셨다. 이 말씀은 그분이 우리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빚진 자들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이 비록 지혜롭지 못한 처사로 인하여 빚을 갚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옥에 가두거나 압제하거나 난폭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비유의 교훈이 태만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선언한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살후 3:10). 주께서는 힘써 일하는 사람들에게 게으른 사람들을 부양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노력을 적게 하므로 가난하고 궁핍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을 고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을 위해서 수고하는 일은 마치 구멍 뚫린 주머니에 돈을 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가난한 자도 있으니 우리는 불행한 자들에게 친절과 동정을 나타내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취급할 때 우리가 바로 그 같은 처지에 놓일 때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고 싶어 하는 대접을 그들에게 해주어야 한다.COL 247.2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아래와 같이 분부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1~5). COL 248.1

    그러나 죄를 경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형제의 죄를 용인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눅 17:3)하라고 하셨다. 죄를 죄라고 지적해 줌으로 죄를 범한 자로 하여금 그것을 분명히 알도록 해야 한다. COL 248.2

    성령의 감동을 입어 디모데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했다. 또 디도에게 편지하기를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딛 1:10~13)려 함이라. COL 248.3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5~17). COL 248.4

    우리 주께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생기는 어려운 문제는 교회 내에서 해결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불신자들 앞에 내놓지 말아야 한다. 만일 한 그리스도인이 자기 믿음의 형제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 법정에서 불신자에게 호소하지 말도록 하라. 그로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을 따라 행하도록 하라.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대신에 그로 하여금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려고 힘쓰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의 복리(福利)를 보호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바르게 재판하시는 주께 우리의 사정을 맡길 수 있다.COL 248.5

    거듭거듭 죄를 범하는 자가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에 그 상대자는 진저리가 나서 너무 많이 용서하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짓고 있는 자를 취급하는 방법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 범죄한 형제가 그대의 신임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해서 멀리하지 말고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갈 6:1)하라. COL 249.1

    만일 어떤 형제가 그대에게 죄를 범하거든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 형제가 그대에게 와서 죄를 자복할 때에 그대는 그의 겸비가 너무 부족 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가 진정으로 자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라. 그대가 사람의 마음속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 형제를 판단할 권리를 가졌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3, 4)고 하셨다. 그러니 일곱 번만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 곧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하여 주신 숫자만큼 용서해 주라는 것이다.COL 249.2

    우리 자신은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의 빚을 지고 있다.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받아들이게 했다. 구주를 통해서 나타난 은혜가 우리의 구속과 중생을 이루게 하고 예수와 더불어 후사가 되도록 역사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야 한다. COL 250.1

    죄에 빠진 자에게 낙심할 기회를 만들어 주지 말라. 바리새인과 같은 완고함이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하라.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조금이라도 조롱하고 비웃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억양에 있어서도 조롱하는 기색이 나타나지 않게 하자. 만일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한 말을 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거나 또는 의심하고 불신하는 태도를 보임으로 인하여 한 영혼을 파멸시킬 수 있다. 이러한 영혼은 그의 마음을 감동시킬 동정어린 마음, 곧 맏형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형제가 요구된다. 그 영혼으로 하여금 자기를 굳게 붙잡아 주는 동정 어린 손길을 느끼게 하고 또 기도합시다라는 속삭임을 듣게 하라.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과 그대 자신 두 사람 모두에게 풍성한 경험을 주실 것이다. 기도는 우리들 사이를 연합시키는 동시에 하나님과 연합시킨다. 기도는 예수님을 우리의 곁으로 오시게 하고 낙심하고 고민하는 영혼들에게 세상과 육신의 정욕과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준다. 기도는 사단의 공격을 물리치게 한다. COL 250.2

    사람이 그들의 눈을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돌려 예수를 바라볼 때에 그들의 품성에 신령한 변화가 생긴다.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하게 한다. 그 다음에 그대가 할 일은 예수를 높이는 일이다. 마음의 눈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에게로 돌려라. 그리고 그대가 이 일에 종사할 때에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약 5:20)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COL 250.3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5). 어떤 것으로도 용서하지 않는 정신을 변명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용서를 체험하게 되면 죄인의 마음은 무한하신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크신 마음에 가까이 끌리게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동식의 조류는 죄인의 심령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에게서 다시 다른 사람의 심령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애를 통해 친히 나타내신 동정과 자비는 또한 그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서도 나타날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고 만다.COL 251.1

    그가 비록 한때 죄의 용서를 받은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의 각박한 정신은 그가 이제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거절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켰고 죄 사함을 받기 전과 똑같은 형편에 처해 있다. 그는 자기의 회개를 부인했고 그의 죄는 마치 그가 회개하지 아니했던 것처럼 그에게 머물러 있다. COL 251.2

    그러나 이 비유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님의 자비와 인간의 몰인정을 대조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자비가 바로 우리가 남을 용서하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COL 251.3

    우리가 남을 용서했기 때문에 용서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다. 모든 용서는 공로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로써 우리가 과연 그 사랑을 내 것으로 삼은 여부를 증거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COL 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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