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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 영적 선물 - 제 1 권

    예언의 선물은 유대인들의 통치 기간에 교회 안에 나타났으나 그 치리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교회가 부패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수세기 동안 이 선물이 나타나지 않다가 메시야의 초림 바로 직전에 다시 주어졌다. 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였고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사람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 예수에 대하여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예언하였으며 안나라 하는 여선지자는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에 대하여 말하”였다. 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가장 위대한 선지자 침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았다.EW 133.1

    기독교 시대는 성령의 부어 주심으로 시작되었고 다양한 영적 은사가 신자들 중에 나타났다. 이것들은 매우 풍성하였으므로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성령의 나타남은 그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고 편지하였는데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적용한 것과 같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 있는 각 사람을 가리켰다. EW 133.2

    큰 배도가 있은 후에는 이러한 은사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영적 은사는 초대 교회에만 국한되었다고 믿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은사들이 그친 것은 교회의 불신과 과오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선포하고 초대 교회 당시의 믿음과 활동을 회복한다면, “늦은비”가 그 은사들을 다시 불러 일으키지 않겠는가? 이렇게 유추해 보면 우리는 분명히 그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 시대의 배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열려졌고 하나님의 성령의 특별한 계시로 종결지어졌다. 기독교 시대의 은사를 전에 부어 주신 것과 비교해 볼 때 달의 희미한 빛에 대하여 햇빛과 같이 더 밝은 영광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흑암으로 끝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하여 필요했듯이 재림을 위하여 그 필요가 더욱 절실하지 않겠는가? 특히 마지막 시대의 위기는 전대 미문의 것이며 거짓 선지자들이 큰 기사와 이적으로 할 수만 있으면 택한자들까지도 미혹하려고 하는 이 때에 그것이 더욱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성경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EW 133.3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5-18). EW 134.1

    켐프벨 역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와 같이 기적적인 능력이 따르리니”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선물들은 사도들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어졌다. 누가 그것을 소유할 것인가? 모든 믿는 자들이 소유할 것이다. 얼마 동안 가질 것인가! 시간의 제한이 없다. 이 약속은 복음 전파에 대한 위대한 사명과 함께 마지막 시대에 사는 신자들에게까지 미친다. EW 134.2

    그러므로 이 도움은 사도들과 그들의 전도를 통하여 믿은 자들에게만 약속된 것으로 그들이 사명을 완수하고 복음을 확립시켰을 때, 그 은사는 그 시대와 함께 끝났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과연 그 위대한 사명이 그 세대에만 국한된 것이었는지 알아보자. 마태복음 28장 19, 20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EW 134.3

    여기에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볼 때 복음 전파의 사명이 초대 교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땅 끝까지 어느 곳에서나 그들 곧 사도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이 세상 끝 혹은 그 시대의 마지막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시대란 유대인의 시대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 시대는 십자가에서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당시와 같은 복음의 신조와 전도에는 항상 그와 같은 영적인 도움이 수반될 것이다. 사도들의 사명은 기독교 시대에 속하며 모든 기독교 시대를 포함한다. 따라서 그 은사는 배도 때문에 그쳤는데 초대 교회의 믿음과 행사가 다시 소생함에 따라 재생할 것이다. EW 135.1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 중에 특별한 영적 은사를 주셨다고 하였다. 그분이 영적 은사를 폐하셨다는 성경상의 근거가 없는 이상 우리는 그 은사들이 계속 존재하도록 뜻하셨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면 그것들이 폐지되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유대인의 안식일이 폐지되고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 세워졌다고 기록된 장 즉 “죄의 오묘”와 “죄의 사람”에 관해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아래와 같은 성경절에 은사들이 그쳤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고전 13:8-13).EW 135.2

    이 성경절들은 영적 은사들 뿐 아니라 믿음과 소망도 그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그것들이 그칠 것인가? 우리는 아직도 “소망이 훌륭한 결실을 맺고 믿음을 보게 되며 기도가 찬양”으로 변할 때를 바라고 있다. EW 136.1

    그것들은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폐지될 것인데 그 때에는 더이상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지 않을 것이요 대면하여 볼 것이다. 온전하게 되어 온전히 알게 될 그날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죄인이 장성한 사람이 되면 기록된 대로 초기 교회들의 예언과 방언과 지식 그리고 또 믿음, 소망, 사랑과 같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구절들 가운데서 소망을 완전히 성취하시기까지, 즉 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나타난 어떠한 최고의 영적인 권능과 지식이라도 무색하게 할 탁월한 불멸의 상태의 영광이 이를 때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에 주신 은사들을 폐지하시기로 의도하셨다는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EW 136.2

    또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도 몇 가지 은사에 관한 기록이 있어서 그것이 지난 일에 불과하다는 평을 들을 만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만일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기록할 때 영감에 의한 다른 기별이 필요 없었다면 그는 왜 바로 그 순간에 성경에다 추가하여 기록하고 있었는가? 적어도 그 문장을 끝내자 마자 펜을 놓았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사도 요한은 왜 30년 후에 계시록을 기록하였는가? 이 책에도 영적인 은사들이 폐지되었다는 증거로 인용되는 또 다른 성경절이 들어 있다.EW 136.3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 19). EW 137.1

    이 성경절은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고 복음 시대의 초기에 예수님과 그분의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 후부터는 그러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라고 저들은 해석한다. 그러므로 그 후의 모든 예언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저들은 이것이 기록된 경전의 마지막이라 말한다. 만일 그렇다면 요한은 왜 그가 밧모섬에서 에베소에 돌아온 후에 그의 복음서를 썼는가? 그러므로 더하거나 제하여 버림을 경고한 이 구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쓴 다음 그 계시록 책만을 의미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든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어느 다른 책에라도 더하거나 제하여 버릴 권리가 없는 것이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함에 있어서 다니엘서에다가 어떤 것을 더 첨가 하였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일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요한이 본 계시들은 다니엘이 본 것들을 확증해 주고 다니엘서에 나타난 것위에 많은 빛을 더 비추어 준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잠잠하시기로 작정하지 않으시고 지금도 당신의 뜻대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잠잠치 아니하신다. 주여, 당신께서 원하시는 자에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EW 137.2

    그리하여 영적 은사들이 폐하여졌다는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내려는 시도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데스(음부)의 문이 교회를 이기지 못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지상에 한 백성을 두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셋째 천사의 기별과 관련된 은사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 개별은 교회를 다시 사도 시대의 기반 위에 세울 것이며 그것을 어두움이 아닌 진정한 빛이 되게 할 것이다.EW 137.3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거짓 선지자가 일어날 것에 대하여 경고를 받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참과 거짓을 구별해 낼 수 있도록 저들의 가르침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을 주셨다. 최고의 시금석은 하나님의 율법으로서 그것은 선지자가 예언한 것을 그의 도덕적인 성품에도 적용해 보는 것이다. 만일 마지막 시대에 참 예언이 없다면 그 사실을 밝힘으로써 속임을 당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간단히 제거하는 것이 거짓과 참이 둘 다 있는 것처럼 그것들을 시험해 볼 시금석을 주는 것보다 얼마나 쉬웠겠는가. EW 138.1

    이사야서 8장 19, 20절에는 현시대의 거짓 영들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율법이 시금석으로 나타나 있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 … 리라.” 만일 영적 은사와 거짓 예언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왜 “그들의 말하는 바가” 라고 하였을까? 예수께서도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15, 16). 이것은 산상 설교 중의 일부분인데 이 부분은 복음 시대를 통하여 교회에 일반적으로 적용되어 왔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기정 사실이다. 거짓 선지자는 그 열매로써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도덕적인 성품으로써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열매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결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선지자라면 이 말씀에 따라 말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에 따라 살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감히 그를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EW 138.2

    평화에 관한 계시들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으로 되어 왔다. 저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때 갑자기 저들에게 멸망이 닥친다. 진실한 사람들은 담대하게 죄를 견책하며 다가오는 진노를 사실대로 경고할 것이다.EW 139.1

    성경 말씀이 선언하는 명백하고도 절대적인 말씀에 부합되지 않는 예언은 일체 거부하여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도 당신의 재림의 광경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경고하실 때 저들에게 그같이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저들 가운데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천사들이 분명하게 말했다. 예수께서 마지막 시대에 있을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경고하실 때 이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이 점에 관한 모든 참된 예언은 그가 만인이 볼 수 있게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 때에 참 선지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 확실하다면 예수께서 왜 “그 때에 모든 예언을 다 거부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EW 139.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EW 139.3

    우리는 이 성경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셨음을 알 수 있다. 이 은사들 중에는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와 교사가 열거되어 있다. 저들을 세우신 목적은 연합과 지식에 있어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목사와 교사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천팔백년 전에 완전히 성취되었으므로 그 후로는 당연히 끝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왜 저들은 목사 또는 교사라는 명칭을 떼어 버리지 않는가? 만일 선지자의 사명이 초대 교회에만 국한되었다면 전도자 그리고 그밖의 모든 사람들의 사명도 그랬어야 할 것이다.EW 139.4

    이제 이 문제에 관하여 잠간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 이 모든 은사들은 성도를 연합시키고 지식과 정신에 있어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주어졌다. 이러한 영향으로 초대 교회는 당시 연합하는 기쁨을 누렸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그리고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여 무리가 큰 은혜를 얻”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와 같은 연합의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행 4:31-33). 오늘날 그러한 연합이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가! 그러나 분열과 파괴를 수반한 배도의 영향으로 교회의 아름다움이 깨어져 버렸다. 그 결과 교회는 분열과 무질서를 초래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기독교계의 신앙이 그처럼 잡다성을 띈 적은 일찍이 없었다. 만일 초대 교회의 연합을 유지하는 데 은사들이 필요했다면 연합을 소생시켜야 할 지금이야말로 얼마나 그것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시대에 교회의 연합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 예언들을 보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시온을 다시 일으키실 때를 파수꾼들이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라는 보증을 갖고 있다. 또한 마지막 때에 지혜 있는 자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일이 달성될 때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여기시는 모든 자들은 믿음의 연합을 가져올 것이다. 그 이유는 바르게 깨달은 자들은 모두 다 같은 것을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연합을 위하여 주신 은사들을 제외시킨다면 무엇으로 이러한 연합을 이룰 수 있겠는가? EW 140.1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여기에 예언된 교회의 완전한 상태는 미래에 일어날 일임이 확실하다. 따라서 이 은사들은 아직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이 서한은 기원 후 64년 즉 바울이 준비된 헌금을 가지고 출발할 때가 가까이 이르렀다고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 약 2년 전에 기록한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보낸 그의 둘째 서한에서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했”다고 써 보내기 10년 전이었기 때문에 배도의 씨가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때이다. 잔인한 이리가 막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양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 때 교회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 연합해서 완전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당파와 분열로 찢겨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배도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남은 무리가 모일 때를 바라보았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썼다(엡 4:13). 그러므로 교회 안에 나타났던 이 은사들은 아직 그 시기가 이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EW 140.2

    “성령을 소멸치 말며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 … 라”(살전 5:19-21). EW 141.1

    이 서한에서 사도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그 때에 주의 날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하다가 멸망이 밤의 도적같이 불시에 임함으로 없어지게 될, 믿지 않는 세상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그 다음에 그는 이 사실에 비추어 교회가 깨어 근신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 권면들 가운데 우리가 인용한 바 “성령을 소멸치 말며 …” 등등의 구절이 들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세 구절들이 의미상 각각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이 구절들은 그 나열되어 있는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성령을 소멸한 사람은 합당한 성령의 열매인 예언을 멸시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욜 2:28). “범사에 헤아려” 한 표현은 여기에선 문제점인 예언에만 국한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 주신 시금석으로 영들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영적 기만과 거짓 예언들이 범람하고 있는 이 때에 이 구절은 특별히 여기에 적용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가 ‘범사를 다 배제하라’고 말하지 않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말했음을 유의하라.EW 141.2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28-32). EW 142.1

    말세에 성령이 강림하실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요엘서의 이 예언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초기에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 인용절에 나타난 대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전조로서 하늘과 땅에 이적을 베푸실 것이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이적들을 보았을지라도 그 두려운 날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온 복음 시대를 마지막 때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마지막 때란 지난 1800년 동안만 가리킨다고 말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그 마지막 시대는 주의 날 즉 하나님의 남은 벡성들이 구원받을 때까지 미친다. 그것은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W 142.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알리는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는 시대에 존재할 남은 무리는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 대하여 묘사한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기록된 ‘여자의 남은 자손’임이 틀림없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EW 143.1

    복음 교회의 남은 무리는 은사를 받을 것이다. 그들에겐 싸움이 불가피할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졌기 때문이다(계 12:17). 요한계시록 19장 10절에 보면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으로 정의되어 있다.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함께 된 종이니라”고 말한 천사는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 사실상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우리는 이 두 구절을 비교하여 볼 때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증거는 한 성령의 의해서 주시는 모든 은사들을 포함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4-7). 그리스도의 증거가 고린도교회 안에 견고케 되었을 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들이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남은 무리가 예수의 증거를 확신하게 될 때 그들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EW 143.2

    R.F.코트렐EW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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