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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보감 1 -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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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적 순종은 가납될 수 없음

    안식일 계명을 부분적으로 지키는 것은 주님께 가납되지 않으며, 그대가 안식일 준수자라고 공언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영향을 죄인들의 마음에 끼친다. 그들은 그대의 생애가 그대의 신앙과 모순되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임을 잃어버린다. 주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하시므로, 사람이 그분의 계명을 무시할 때는 형벌을 면할 수 없다.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예는 거룩한 율법을 불순종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충분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원수의 그럴 듯한 유혹에 귀를 기울인 우리의 첫 조상들의 죄는 세상에 범죄와 슬픔을 가져 오고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궁정을 떠나 지상의 비천한 처지에 놓이게 하였다. 그분은 당신이 친히 축복하시러 오신 바로 그들에 의해 모욕과 거절과 십자가의 형을 받으셨다. 에덴 동산의 불순종 때문에 얼마나 무한한 대가가 지불되었는가! 하늘의 임금께서 인간을 범죄에서 구해 내기 위하여 희생되셨다. 1TT 495.2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분의 계명에 대한 어떠한 범법도 당신께서 아담에게 선고를 내린 당시보다 가볍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거룩한 율법을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는 자들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신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우리의 생애가 드러내는 교훈은 전적으로 진리를 위하든지 반대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만일, 그대의 행위가 범죄자의 죄를 정당화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거나 그대의 감화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을 가볍게 만든다면, 그대는 스스로 죄를 범함은 물론이요 그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이 범하는 잘못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1TT 495.3

    네째 계명의 바로 서두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많은 염려와 고충 속에서 계명의 완전한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핑계할 유혹을 당할 것과, 세상 사업의 부담으로 네째 계명의 거룩한 의미를 망각할 것을 아시고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 20:9), 곧 세상의 이익과 쾌락을 위한 생활상 일상 사업이 여기 포함된다. 이 말씀은 매우 명백하여 오해할 여지가 없다. 1TT 496.1

    K 형제여, 이와 같이 엄숙하고 중요한 계명을 어떻게 감히 범하는가? 주님께서 세상에 주신 계명에서 그대를 면제시키는 예외를 만드셨는가? 그대의 범법이 기록책에서 누락될 것인가? 민족들이 그분 앞에 심판을 받기 위하여 나아올 때에 그분께서 그대의 불순종을 용서해 주기로 하셨는가? 그대의 죄가 상당한 형벌을 가져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한 순간도 그대 자신을 속이지 말라. 그대가 빛을 받았으나 그것과 정반대로 행했기 때문에, 그대의 범법에는 형벌의 채찍이 따를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눅 12:47). 1TT 496.2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 자신의 일과 생애의 일반 사업을 하도록 엿새를 주셨다. 그러나, 당신이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신 한 날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그 날을, 사람이 노동에서 쉬고 예배에 바쳐 그의 영적 상태를 증진시키는 날로 삼게 하신다. 인간이 여호와의 거룩한 한 날을 도적하여 자신의 이기적 목적에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를 범하는 일인가!1TT 496.3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보잘것없는 일시적 이익을 위하여 감히 전능하신 분과 타협하는 것은 가장 참람된 일이다. 때때로 안식일을 세속적 사업에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자비한 범법이다. 그것은 주님의 계명을 편의상의 문제로 삼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이 시내 산에서 우뢰와 같이 울려 나온다. 부분적 순종, 분리된 관심은, 그분을 미워하는 자들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에게 가납될 수 없다. 이웃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며, 그러한 행동을 한 죄가 있다고 판명되는 자에게 찍혀지는 낙인은 대단하다. 그러나, 동료 인간의 것을 사취하는 것을 멸시하는 자가 하늘 아버지께서 축복하시고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하신 시간을 부끄러움도 없이 훔치고 있다. 1TT 497.1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의 행위는 그대가 공언하는 믿음과 일치되지 않으며, 그대의 유일한 변명은 편리하다는 어설픈 호소뿐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믿음을 옹호하기 위하여 생명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대의 행동은, 신앙을 포기하거나 진리의 원칙을 희생하기보다는 차라리 굶주림과 기갈, 고문과 죽음을 당한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 1TT 4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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