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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증언 5 -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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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장 — 호 소*

    나는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상태를 생각할 때 슬픔으로 충만해 진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을 닫아 버리지 않으셨지만 우리 자신의 계속적인 배교의 행동이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켰다. 교만과 탐욕과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은 추방이나 유죄 선고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 속에 간직되어 왔다. 비통하고 참람된 죄악들이 우리들 사이에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견해는 교회가 번영하고 있다는 것과 교회의 모든 영역에는 평안과 영적 번영이 있다는 것이다.5T 217.1

    교회는 그 지도자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서 돌아섰고 꾸준히 애굽을 향하여 퇴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결핍에 우려를 나타내거나 놀라는 자들은 별로 없다. 의심과, 심지어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불신하는 일까지 도처에서 우리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단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 대신에 자아를 전하는 목사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증언들은 읽혀지지 않고 이해되지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말씀하셨다. 빛은 그분의 말씀과 증언들에서 비취고 있었지만 그 둘은 다 같이 등한히 여겨지고 멸시되어 왔다. 그 결과는 우리들 사이에서 순결과 헌신과 열성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5T 217.2

    각 사람은 마음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해보라.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영적 허약과 불화의 상태에 빠져 버렸는가?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믿음과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스스로 초래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분의 뜻을 깨닫는 더 깊은 지식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호의와 칭찬을 구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대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대들 자신의 행동을 판단해 보라. 그대들은 지혜로운 친구들을 찾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세속적인 친구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동료들을 즐겨 택하고자 하고 있는가?5T 217.3

    그대들의 레크리에이션은 도덕적 영적 활력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인가? 그것들은 사상과 행동의 순결로 이끌어 갈 것인가? 불순이 오늘날 널리 보급되어 있는데, 심지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도덕적 능력은 끊임없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에, 정욕은 억제되지 않고, 동물적 성향은 방종으로 힘을 얻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금지하는 세속적이요 풍기를 문란케 하는 오락에 열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세속적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의 대열에 속한다.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평원의 도시들을 멸망시킨 죄들은 오늘날 단순히 이교의 지역에서 또한 이른바 일반 그리스도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자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죄들을 그분의 눈에 나타나는 그대로 그대들 앞에 제시해 주실 것 같으면 그대들은 수치와 공포로 충만해질 것이다. 5T 218.1

    그러면 이 우려를 자아내는 상태는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나는 무엇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지 안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자, 중생하지 못한 본성의 타락상을 심각하고 예리하게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돌과 같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어지지 않는다. 반석되신 그리스도 위에 떨어져 깨어지기를 바라는 자들은 별로 없다. 5T 218.2

    그대들이 누구이든지, 그대들의 생애가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그대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대들은 회개해야 한다. 그대들은 속절없는 상태 그대로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떨어져야 한다. 그대들은 의사의 필요를 느껴야 하고, 죄의 유일한 치료제인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함을 느껴야 한다. 이 치료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 또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에 의하여 여전히 시작되어야 할 사업이 있다. 옛날의 바리새인들처럼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구주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대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교만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7) 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피는 정결케 하는 그 능력의 필요를 느끼는 자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효력을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5T 218.3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요구할 권리가 조금도 없을 때 그리스도께서 즐겨 우리의 구속을 담당하신 것은 얼마나 뛰어난 사랑이며 겸손인가! 그러나 우리의 크신 의원께서는 모든 영혼에게 주저하지 않는 순종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황에 대한 처방을 스스로 내려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의지와 행동을 완전히 지배하셔야 한다. 5T 219.1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상태와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업의 성격과 방법에는 모든 세상의 원칙과 반대되고 인간의 마음의 교만과 상치되는 것이 많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그분의 손에 완전히 맡기고 그분의 사랑과 지혜를 신뢰하도록 요구하신다. 5T 219.2

    우리는 니고데모처럼, 우리의 도덕적 품성이 올바랐으므로 보통 죄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다고 뽐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들의 괴수와 똑같은 방법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도록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완전히 의지해야 한다. 자아는 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에서 온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이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시 115:1). 5T 219.3

    진정한 믿음에 사랑이 뒤따르고 사랑에 순종이 뒤따른다. 회개한 사람의 모든 힘과 정욕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분의 영은 새롭게하는 능력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꾸어준다. 이 경험은 진리를 믿노라고 고백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하게 되어 나는 슬퍼진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죄악적 욕망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공언한다. 그들은 마음을 하나님께 결코 굴복시키지 않았다.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그들은 등과 함께 은혜의 기름을 그릇에 담는 일을 등한히 했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믿노라고 공언하고 심지어 진리를 가르치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죄의 속박에 매여 있다고 말하는 바이다. 저열한 정욕은 마음을 더럽히고 심령을 부패케 한다. 가장 비열한 죄악 가운데 있는 어떤 사람들은 사단을 더욱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하여 하늘의 제복을 빌려 입었다.5T 219.4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일 3:9).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고, 하나님의 소유인 몸과 정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가장 엄숙한 서약에 매여 있음을 느낀다. 죄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속에서 정복된다. 그는 날마다 이렇게 물어 본다. “여호와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 “주여, 나로 무엇을 하게 하시려나이까?”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멍에가 목을 괴롭히고 있다고 결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에게 기쁨이 된다. 그는 자신의 부족에 맞추고자 하나님의 명령을 낮은 표준으로 내리고자 하는 대신에 그 명령을 이루는 수준을 높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5T 220.1

    우리가 하나님의 날에 서기 위하여 준비하고자 하면 그와 같은 경험은 우리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이제 은혜의 시기가 지체되고 있는 동안, 자비의 음성이 아직 들리고 있는 동안은 우리가 죄를 버릴 수 있는 시간이다. 도덕적 흑암이 장례의 휘장처럼 땅을 덮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깃발을 든 자들의 빛은 더욱 밝게 비추고 하늘의 빛과 사단 흑암과를 구분해 나타내야 한다. 5T 220.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은혜 안에 완전히 설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해주심으로 아무것도 부족이 없이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해주셨다. 그대들은 준비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혼인 예복을 입고 있는가? 그 의복은 속임과 불순과 타락과 위선을 결코 가리워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눈은 그대들을 주시하고 있다. 그것은 사상과 마음의 의도를 알아낸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람들의 눈에서는 숨길 수 있을지라도, 우리의 창조주에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5T 220.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죽음에 내어 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은혜의 보좌 앞에 아뢸 수 있다. 우리는 무가치하지만 그분을 통하여 모든 영적 축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분께 나오고 있는가? 5T 221.1

    우리는 어떻게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사랑을 알 수 있는가?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 듣고 알 것이 아니고, 읽고 알 것이 아니고, 믿고 알 것이 아니라, —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시 34:8) 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에 의존하는 대신에 그대들 스스로 맛을 보라. 5T 221.2

    경험은 실험으로 얻은 지식이다. 체험적 신앙이 오늘날 필요하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어떤 사람들 — 사실상 많은 수의 사람들 — 은 신앙적 진리에 대한 이론적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새롭게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들의 마음에 결코 느껴본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성령에 의하여 기록된 경고와 책망과 교훈의 증언들에 유의하는 일에 언제나 느리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믿지만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아무런 열렬한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하늘을 믿지만 그것을 얻기 위하여 희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혼의 가치를 믿으며 오래지 않아 그 구속은 영원히 끝나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기회들을 등한히 한다. 5T 221.3

    그들은 성경을 읽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위협적인 경고가 경성하게하지 않고 그 약속이 그들과 함께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탁월한 일들을 인정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지 말도록 금지하신 길을 따른다. 그들은 피난처를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옳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지식은 그들의 정죄를 가중시킬 뿐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을 결코 맛보지 않았고 경험을 통하여 배우지 않았다.5T 221.4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평판이 좋든 나쁘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오늘날 이렇게 하고 있는 자는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은 거짓되이 예언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결과적으로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가? 그들의 일이 그 모든 결과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검토될 때 어떤 결정이 내릴 것인가? 5T 222.1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하나의 싸움이다. 사도 바울은 그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 정사와 권세를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고 말한다. 다시 그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 (히 12:4)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렇다. 오늘날은 죄를 간직하고 변명한다. 예리한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을 쪼개지 않는다. 신앙이 바뀌었는가?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적의는 감소되었는가? 신앙 생애는 한때 어려움을 가져다 주고 극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 것이 매우 쉬워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흑암의 세력과 타협해 왔다. 5T 222.2

    엄격한 증언이 되살아나야 한다. 하늘로 향해 가는 길은 우리 구주의 시대보다 오늘날 더 순탄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모는 죄는 버려져야 한다. 우리의 신앙 생애를 방해하는 모든 방종은 끊어 버림을 당해야 한다. 만일 우리에게 거치는 것이 된다면 오른눈이나 오른손도 희생되어야 한다. 우리는 즐겨 우리 자신의 지혜를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하늘나라를 받아들이고자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택한 세속적인 친구들을 즐겨 버리고자 하는가?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을 즐겨 희생하고자 하는가? 영생의 상급은 무한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얻어야 할 목적의 가치에 상응한 노력을 하고 희생을 할 것인가? 5T 222.3

    우리가 이루는 교제는, 아무리 제한된 것일지라도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준다. 우리가 그 영향을 받는 범위는 친밀의 정도, 교재의 항구성 (恒久性), 우리가 교제하는 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 등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와의 친숙과 교제를 통하여 우리는 흠없는 모본되신 그분과 같아질 것이다.5T 222.4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 — 얼마나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일인가! 만일 우리가 그런 교제를 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어떤 희생도 불사할 것 같으면 그 교제를 누리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초기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들은 그분을 찾고, 발견하고 따랐다. 그들은 집에서, 식탁에서, 골방에서, 들에서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교사와 함께 있는 학생들처럼 그분과 함께 있었고, 날마다 그분의 입술에서 거룩한 진리의 교훈을 받았다. 그들은 마치 종들이 그들의 의무를 깨닫기 위하여 주인을 쳐다보듯이 그분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그분을 섬겼다. 그들은 훌륭한 병사들이 그들의 사령관을 따르듯이 그분을 따르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다. 그들은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 (계 17:14) 이다. 5T 223.1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6).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같아지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주목과 논평의 주제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 큰 변화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품성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더욱 밀접히 닮으면 닮을수록 그 자신에 대한 견해가 더욱 겸손해 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목격되고 느껴질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일에 가장 깊은 체험을 가진 자들은 교만과 자고심에서 가장 멀리 옮겨져 있다. 그들은 자아에 대해서는 가장 겸손한 생각을 갖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탁월함에 관하여서는 가장 고상한 관념을 가진다. 그들은 그분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낮은 자리가 그들에게는 너무도 명예로운 자리임을 느낀다. 5T 223.2

    모세는 광채로 빛나는 그의 얼굴이 그 자신처럼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은 자들에게 고통과 위협이 된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나타난 그 자신의 향상에 대하여 매우 겸비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빌 3:12) 고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께 크게 영광을 받았다. 그는 거룩한 이상 (異像) 가운데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가서, 알려 주도록 허락되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를 그 곳에서 받았다.5T 223.3

    침례 요한은 우리 구주께로부터 선지자들 중 가장 크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이 사람의 말과 십자가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말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이냐는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주님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주장한다. 그의 제자들이 사람들의 주의가 새 선생에게로 향해졌다는 불평을 했을 때, 요한은 그들에게 자기 자신이 다만 약속하신 분의 선구자에 불과한 것으로 주장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신랑처럼 그분의 백성의 애정의 첫째 자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다.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요 3:29-31, 33). 5T 224.1

    오늘날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일꾼들이다. 자부심이 강하고, 질투심과 시기심이 많고, 비평적이고 흠을 찾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그분의 거룩한 사업에 사용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어떤 선한 일을 성취할 수 있을지라도 그들은 목회직에 용납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나 재물이 없어서 괴로움을 겪지는 않으신다. 그분은 진실하고 성실하며, 순결하고 거룩한 일꾼들, 속죄하는 그리스도의 피와 거룩하게 하는 그분의 영의 은혜가 필요함을 느끼는 자들을 부르신다. 5T 224.2

    나의 형제들이여, 하나님은 그대들의 질투와 시기, 그대들의 가혹함과 분쟁 때문에 슬퍼하신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 그대들은 사단에게 순종하고 있지만 그리스도께는 순종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원칙에 확고하고, 의무에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사업에 열성이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고 겸비하며, 온유하고 부드럽고 인내하며,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에게 사랑을 나타내고 즐겨 용서해 주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또한 그분에게서 배운 분명한 증거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그것과 반대의 기질을 나타낼 때, 그들이 교만하고, 허왕되고, 경솔하고, 세속적인 마음을 나타내고, 탐욕적이고, 불친절하고, 비판적일 때, 우리는 그들이 누구와 교제하고 있으며,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들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마법을 믿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령과 교통하고 있다.5T 224.3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하는 바이다.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4-18). 5T 225.1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요한에게 몰려왔을 때, 그 담대한 의의 전도자는 그들에게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7, 8). 이 사람들은 합당치 못한 동기로 요한에게 나왔다. 그들은 유해한 원칙을 품고 타락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참 상태를 깨닫지 못하였다. 교만과 야심으로 충만해 진 그들은 그들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향을 강화시키는 일에 있어서 어떤 수단도 서슴치 않을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계획을 더 잘 실천하기 위하여 요한의 손에 침례를 받고자 나왔다. 5T 225.2

    요한은 그들의 동기를 읽었으므로 엄격한 질문으로 그들을 대했다.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만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 같으면, 그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그 사실에 대한 증거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그 경고를 사람의 음성으로 들었다. 그들은 요한이 말하는 능력과 담대함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마음에 확신을 주지 않았으므로 필연적 결과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들은 마음의 변화에 대한 증거를 보이지 않았다. 요한은 그들에게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외형적 의식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했다.5T 225.3

    그 선지자의 책망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그들은 진리를 지지하는 분명하고 확신 있는 논증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로서보다는 인간적 추론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죄인된 그들의 상태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없고, 진정으로 마음을 깨뜨리는 일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큰 비하 (卑下) 라고 생각한다. 5T 226.1

    그리스도의 정신이 전혀 없고 질투, 시기, 또한 칭찬과 인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의 업적 때문에 교만으로 충만한 독선적인 형식주의자들보다 하늘 나라에서 더 먼 사람은 없다. 그들은 요한이 독사의 자식, 악한 자의 자녀들이라고 말한 것과 동일한 계층에 속한다. 그런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고, 의심을 받지 않은 채 우리들 사이에 존재한다. 그들은 가장 부도덕한 방탕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단의 사업에 봉사한다. 왜냐하면 방탕자는 그의 참모습을 가장하지 않고 그의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5T 226.2

    하나님께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하신다. 그런 열매가 없으면 우리의 신앙 고백은 아무 가치가 없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결코 부른 적이 없는 자들 사이에서도 진실한 신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9). 5T 226.3

    하나님은 마음과 생애가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를 범하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호의를 보이지 않으실 것이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마 3:10). 5T 226.4

    의의 사업을 등한히 하면서 목사를 칭찬하고 추켜 세우는 자들은, 그들이 목사에게 돌아온 것이지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 준다. 우리는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라고 묻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통하여 그대들이 들은 것은 성령의 음성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소리였는가? 맺힌 열매가 나무의 성격을 증거할 것이다.5T 227.1

    외형적 형식이 우리를 정결케 할 수 없다. 가장 성자다운 사람이 집례한 의식도 성령의 침례를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하셔야 한다. 거듭나게 하는 그 능력을 경험하지 않은 모든 사람은 알곡 가운데 있는 쭉정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을 철저하게 정하게 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장차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 (말 3:18) 를 분별하실 것이다. 5T 227.2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께로서 난 모든 사람들 안에서 드러날 것이다. 투쟁과 싸움은 성령으로 지배받는 자들 사이에서는 생길 수 없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사 52:11). 교회는 그 목사가 견지하는 표준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회개한 목사와 회개한 백성이 필요하다. 마치 그들이 회계해야 할 자인 것처럼 영혼들을 돌보는 목사들은 양떼들을 평강과 거룩함의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이 사업에서의 그들의 성공은, 그들이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나는 성장에 비례될 것이다. 교사들의 영혼과 육체와 정신이 거룩해 질 때 그들은 그와 같은 성화의 중요성을 백성들에게 감명 깊이 새겨 줄 수 있다. 5T 227.3

    무심한 방법으로 신앙적 문제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진정한 심령의 갈급성과 산 믿음 없이 영적 축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별로 효력이 없다. 그리스도의 주변으로 가까이 밀려간 방황하는 군중은 그 접촉에서 생명의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불쌍하고 고통받는 여인이 큰 필요를 느끼고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는 치료의 능력을 느꼈다. 그의 접촉은 믿음의 접촉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접촉을 아시고, 마지막 때까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훈을 거기서 주시고자 작정하셨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당신에게서 나간 줄 아시고 무리를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그런 질문에 놀라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라고 대답했다.5T 227.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한 여자를 주목하셨다. 그 여자에게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에게는 큰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제넘은 일을 했던가? 그에게 이루어진 것을 알고 그는 떨면서 나아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다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부드럽게,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0, 31, 34) 라고 말씀하셨다. 5T 228.1

    여기에서 무관심한 접촉과 믿음의 접촉이 구별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산 믿음의 활용이 없는 기도와 설교는 허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접촉은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과 지혜의 보고를 열어 준다. 그리하여 진흙으로 된 기구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의 이적들을 이루신다. 5T 228.2

    이러한 살아 있는 믿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이 진실로 우리의 소유임을 알아야 하고. 그분의 정신이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고 세련되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종들이 온유와 사랑과 함께 진정한 믿음을 가진다면, 그들이 어떤 사업을 이루겠는가! 어떤 열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타나겠는가! 5T 228.3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육신적 방심에서 그대들을 깨우기 위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들의 위험을 보았다. 교회안에는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공존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에서 이 두 계급을 나타내신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권면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4, 5). 5T 228.4

    가장 (假裝) 된 연합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이룬 진정한 연결과는 크게 다르다. 진리를 믿는다는 공언은 사람들을 교회에 속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산 포도나무와 생명적 연결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참 제자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분을 믿는 믿음이 없는 자들을 구별하는 하나님의 척도가 주어져 있다. 한 무리는 열매를 맺고 있지만 다른 무리는 열매가 없다. 한 쪽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하나님의 칼에 자주 전정을 당하지만 다른 쪽은 마른 가지들로서 머지않아 산 포도나무에서 잘려 나가게 되어 있다.5T 228.5

    나는 우리 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산 증언을 간직하고 교회가 불신의 요소들로부터 순결하게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 15:4) 라고 한 말씀에서 밝혀진 것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더 밀접하고 더 친밀한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가? 가지의 섬유질은 포도나무의 섬유질과 거의 동일하다. 줄기에서 가지로 전달되는 생명의 교류와 힘과 결실은 방해받지 않고 계속적이다. 뿌리는 가지를 통하여 그 영양분을 보낸다. 그와 같은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참 신자의 관계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그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5T 229.1

    이 영적 관계는 개인적 믿음을 활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믿음은 우리 편에서 최고의 우선권, 완전한 의존, 완전한 헌신을 나타내어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완전히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되고, 우리의 감정과 욕망과 흥미와 명예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번영과 그분의 사업의 영광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서 감사를 받으셔야 한다. 5T 229.2

    이와 같은 연결과 교통의 친밀함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께 놓여지고, 그분의 의는 우리에게 입혀지게 된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되셨다.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영접을 받는다. 누구든지 말이나 행동으로 믿는 자를 해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드린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5T 229.3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 대한 당신의 관계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상징을 주신 것은 그분께서 바야흐로 제자들을 떠나가고자 하신 때였다. 그분은 볼 수 있는 당신의 임재가 없어진 후에 그들이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분 자신과의 밀접한 연합을 그들 앞에 제시하고 계셨다.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그 가장 두드러지고 적합한 상징으로서 포도나무를 그들에게 제시하셨다.5T 230.1

    유대인들은 언제나 포도나무를 식물들 중 가장 고상한 것으로, 또한 강하고, 탁월하고, 결실이 풍부한 모든 것의 한 상징으로 간주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대들이 그처럼 높이 평가하는 포도나무는 하나의 상징이다. 나는 실체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한 민족으로서 그대들은 포도나무를 높이 평가한다. 그대들은 죄인들로서 나를 세상의 모든 것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분리되면 살 수 없다. 그대들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 수 없다.” 5T 230.2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처럼 이 교훈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반역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다. 그 분리는 넓고 무섭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다시 그분 자신과 연결시켜 주기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하셨다. 악의 세력은 인간의 본성과 너무도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아무도 승리할 수 없다. 이 연합을 통하여 우리는 도덕적 영적 힘을 얻는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면 의의 열매, 사람들에게 영광과 축복이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5T 230.3

    아버지는 포도를 손질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능숙하게 자비롭게 열매맺는 모든 가지를 전정하신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난에 동참하는 자들이 이후에는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 (히 2:11) 신다. 그분의 천사들이 그들을 섬긴다. 그분의 두번째 나타나심도 인자로서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의 영광 중에서까지도 그분은 당신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실 것이다. 그분과 연합한 자들에게 그분께서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 49:15, 16) 라고 언명하신다. 5T 230.4

    아,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가!5T 231.1

    우리는 이런 축복을 얻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가장 열렬한 노력을 할 것인가? 우리는 의에 의하여 우리의 죄를, 주님께로 돌아옴으로 우리의 범죄를 깨뜨려 버릴 것인가? 회의론과 불신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라고 질문하셨다. 우리는 적극적인 산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항구성 (恒久性) 은 우리의 연합의 조건이다. 5T 231.2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이룬 연합은 지속적이다. 모든 다른 연합은 파멸되고야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를 모든 것 가운데 첫째요 마지막이요 최선의 것으로 택한다. 그러나 이 연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치르게 한다. 그것은 교만한 자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철저한 의존의 연합이다. 이 연합을 이루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필요를 느껴야 한다. 그들은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시켜야 한다. 외적 장애와 내적 장애로 더불어 싸우는 투쟁이 있을 것이다. 애착의 과업은 물론이요 괴로운 분리의 과업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려면 교만, 이기심, 허영, 세속적인 것 — 모든 형태의 죄 — 을 이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생애는 그처럼 통탄스럽게도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그처럼 변덕스럽고, 그처럼 가변적인 이유는 이 간직된 우상들로부터 먼저 그들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고 그들 스스로를 그리스도께 결합시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5T 231.3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진 후에는 오직 열렬한 기도와 불굴의 노력을 통해서만 그것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는 자아를 저항하고, 자아를 부인하고, 자아를 정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용기와 믿음과 경계로써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 있다. 5T 231.4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나 하나의 가지는 다른 가지에 의하여 지탱될 수 없다. 포도나무와의 산 연결을 통하여 영양분이 섭취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완전히 의존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내 안에 거하라” 는 명령의 의미이다.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삶은 사람들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 주님의 원수들을 기쁘게 하기 위함도 아니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신 분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애정이 세상과 그 쾌락과 그 방탕에서 분리되지 않고 이 연합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불순종하는 일에 마음을 담대하게 만들 뿐이다.5T 231.5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믿음과 사랑이 슬프게도 결핍되어 있다. 우리의 노력은 우리가 사는 위기의 때를 위하여 너무 약하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교만과 방종, 불경과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신앙 생애에 불리한 모든 교제를 피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환경을 택할 때에 그들의 영적 번영을 먼저 생각하는 자는 별로 없다. 5T 232.1

    부모들은 시골에서보다 생계를 유지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가족과 함께 도시로 모여든다. 자녀들은 학교에 있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므로 거리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나쁜 친구들에게서 부도덕과 방탕의 습관을 배운다. 부모들은 이 모든 것을 본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을 고쳐 주는 데는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단이 자녀들을 완전히 지배할 때까지 그들이 있는 곳에 머물게 된다. 그대들에게 맡겨진 귀중한 영혼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모든 세속적 유익을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 그들은 유혹의 맹렬한 공격을 받을 것임으로 그것들을 대항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가족을 하나님께 가장 거리낌 없고, 솔직하고, 진심으로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영향력을 끊어 버리고, 모든 습관을 깨뜨리고 모든 유대를 잘라 버리는 것이 그대들의 의무이다. 5T 232.2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 대신에 할 수 있는 대로 그대들의 자녀들이 유혹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어떤 한적한 환경을 찾아서 거기서 그들을 유용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고 교육시켜라. 선지자 에스겔은 소돔을 범죄와 멸망으로 이끈 원인들을 이와 같이 열거한다.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겔 16:49). 소돔의 운명을 피하고자 하는 모든 자들은 그 악한 도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그 길을 피해야 한다.5T 232.3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요구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인 관심에 몰두되고, 세속적인 보화에 마음이 끌린 채 거짓된 안전 속에 편히 쉬고 있다. 그대들은 악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위험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대들이 각성하여 회개와 겸손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지 않으면 그대들은 기만당하고, 미혹 당하여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다. 5T 233.1

    거듭거듭 하늘에서 온 음성은 그대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음성에 순종하겠는가? 그대들은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구하라는 참된 증인의 권면에 유의할 것인가? 금은 믿음과 사랑이며, 흰 옷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리고 안약은 그대들로 하여금 사단의 간계를 깨달아 그것들을 피하게 해 주고, 죄를 찾아내어 그것을 증오하게 하고,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순종하게 해주는 영적 식별력이다. 5T 233.2

    세상의 치명적인 혼수 상태는 그대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대들이 사단에 의하여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불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구에 지상에 쏟아지려 하고 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창 19:17) 는 말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한 경고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다른 음성도 들린다. “흥분하지 말라. 특별히 놀랄 이유는 없다.” 하늘은 범죄한 자에게 신속한 멸망이 바야흐로 임한다고 선포하고 있는데, 시온에서 안락하게 있는 자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고 부르짖는다. 젊은이들, 경박한 자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 경고를 쓸데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조롱하면서 돌아선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그 문제에 있어서 대체로 올바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두 평안하게 잠을 잔다. 옛 세상이 멸망될 때와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소멸될 때도 그러했다. 그들의 멸망 전야 (前夜) 에 그 평원의 도시들은 쾌락으로 떠들썩했다. 롯은 그의 공포와 경고 때문에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불꽃 가운데서 멸망당한 것은 그 조롱자들이었다. 바로 그 밤에 자비의 문은 악한 자들, 곧 부주의한 소돔의 거민들에게 영원히 닫혀졌다.5T 233.3

    영혼들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항상 조롱을 받지만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반드시 희롱 당하지 만은 않으실 것이다. 이미 그분의 심판은 땅에 임하고 있다. 사납고 무서운 폭풍은 지나가면서 파멸과 죽음을 남긴다. 삼켜 버리는 불은 사람이 없는 숲과 인구가 조밀한 도시를 쓸어 버린다. 폭풍과 파선은 바다를 여행하는 자들을 기다린다. 사고와 재난은 육지를 여행하는 모든 자들을 위협한다. 태풍, 지진, 전쟁과 기근은 신속히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굳어진다. 그들은 경고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몰려오는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유일의 피난처로 도망하지 못할 것이다. 5T 234.1

    날카로운 눈으로 접근하는 위험을 보고 경고의 음성을 높이도록 시온의 성벽 위에 배치된 많은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이 위기의 시간에 가장 활동적이고 방심하지 않아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고 영혼들의 피를 그들 자신에게 초래하고 있다. 5T 234.2

    나의 형제들이여, 악한 불신의 마음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제한 조항에 있어서 분명하고 철저하다. 그것은 그대들의 이기적 방종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거기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분의 영의 증언들은 성경을 주목하도록 호소하고, 그대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지적하고 그대들의 죄를 책망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증언들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대들의 육신적이요 안락을 좋아하는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한다. 만일 그대들이 그 교훈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불신이 그 증언들의 진실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것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면 그것들은 설 것이다. 과거 36년동안 교회안에 존재해 온 이 증언들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고, 이 경고와 책망을 그대들에게 하신 하나님이시다.5T 234.3

    우리 구주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 가운데 특별히 우리에게 적용되는 권고의 말씀들이 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 21:34). 깨어라, 기도하라, 일하라, — 이 말은 믿음의 진실한 생애이다. “항상 기도하” (눅 21:36) 라. 즉 언제나 기도의 정신으로 지내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주님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될 것이다. 5T 235.1

    파수꾼들은 백성들의 상태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대들이 교만과 시기와 의심과 다른 죄들을 향하여 문을 열어 주는 한 투쟁과, 증오와 온갖 악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예수님께서는 그대들의 손님으로 들어오게 해 달라고 요청하신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분께 들어오시라는 말을 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분은 구약과 신약에서 다 같이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다. 그분은 당신의 영과 당신의 섭리를 통하여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의 교훈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진실하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만드시고자 의도된 교훈이다. 5T 235.2

    예수님은 인류에게 완전하고 철저한 모본을 남기시기 위하여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모든 목적과 감정과 사상에 있어서 진실 즉 마음과 영혼과 생애에 있어서 진실하신 당신 자신과 같게 우리를 꼴 지우시겠다고 제안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이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진리를 순종하므로 순결해지고, 고상해지고, 성별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신앙은 세속적 원칙들과 결코 조화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정직은 모든 기만과 가장과 반대된다.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사람, 구주의 모습을 가장 완전하게 반사하는 자는 지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진실하고, 가장 고상하고,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5T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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